1화
하리하랄라야 제국의 여제.
오늘날 ‘대 여제’로 일컬어지고 있는 파비트라는 황제 샤미르 3세의 막내딸로 태어났다.
파비트라가 태어나기 전에 샤미르 3세는 두 명의 황후로부터 네 황자와 세 황녀를 얻었는데 이미 모두 성인이었다.
두 황후가 죽고 나자 샤미르 3세는 세 번째 황후를 맞아들였다. 그때 황제의 나이가 쉰아홉이었다.
이듬해, 황제의 60회 탄신일을 하루 앞두고 황녀가 태어나자 황제는 크게 기뻐하며 딸에게 파비트라, 즉 ‘귀한 선물’이라는 이름을 내렸다.
황녀이자 여덟째인 파비트라는 황위 계승과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사랑만은 넘치도록 받았다. 어린 파비트라에게 금지된 것은 아무것도 없는 듯했다. 황제의 식탁에 같이 앉아 간식을 먹었고, 황제의 정원에서 물놀이를 했고, 황제의 침대에서 낮잠을 잤다.
어느 날은 어린 황녀가 황제의 보관을 써보고 싶다고 조르자 황제가 선선히 허락하는 바람에 조신들이 모두 크게 놀랐다.
재상 베온이 황제께선 일곱 황자, 황녀들을 엄격하게 키우셨는데 어째서 파비트라만은 달리 대하느냐고 묻자 황제는 ‘나는 다른 자식들을 품으며 수십 년 동안 빛을 쬐어 주었는데 이제 파비트라에게는 그 절반도 쬐어주지 못할 테니 어찌 그 열이 뜨겁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그러자 베온이 그런 마음이시라면 일찌감치 파비트라의 혼처를 찾아 혼약을 맺어 놓으라고. 가문은 변경지역일수록 좋겠노라고 진언했다.
황제는 그 말이 옳다고 여겨 탑의 도시의 총독 기하르의 아들 이스밀과 황녀를 혼약시켰다. 그때 이스밀의 나이는 열다섯, 파비트라는 여섯 살이었다. 정식 혼례는 파비트라가 열다섯 살이 될 때 치르도록 정했다.
파비트라가 여덟 살이 되었을 때 황제가 승하했다. 태자가 황위를 이어 샤미르 4세가 되었다. 새 황제는 몸이 약한 데다 하나뿐인 아들도 일찍 죽었기에 자신과 어머니가 같은 셋째 황자 누로날을 태자로 책봉하려 했다.
그러자 둘째 황자 카타할이 반발했고, 그것을 기화로 계승에 대한 황자들의 알력이 본격화되었다. 거기에 맏황녀 카타니아와 샤미르 4세의 황후 샤헬까지 끼어들면서 황궁은 음모와 계략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그런 와중에 여덟 살 먹은 어린 황녀를 돌아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니, 오히려 여덟 살이라 목숨을 보전했다고 보아야 할지도 몰랐다.
4년 뒤, 카타할이 피살되고 카타니아가 서부로 도망치면서 다툼은 일단락되는 듯했다. 카타니아가 탑의 도시에 숨었다는 소문이 퍼지자 황제의 측근들은 탑의 도시가 반역을 꾀할지도 모르니 파비트라와 이스밀의 혼약을 깨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일은 거의 성사될 뻔했다. 정체불명의 괴한들이 황궁에 침입해 파비트라를 납치해 가기 전까지는.
정황으로 보아 황녀를 납치한 자들은 탑의 도시에서 왔음이 분명했다. 샤미르 4세는 크게 노해 당장 파비트라를 돌려보내지 않으면 전쟁을 각오해야 할 것이라고 통고했다.
그러나 기하르 총독과 이스밀은 황녀를 납치한 사실이 없다고 끝까지 잡아뗐다. 황제는 죄가 없다면 이스밀이 직접 황도로 와서 해명하라고 명했다.
이스밀은 혼자 황도로 가서 감옥에 갇혔다. 예상대로 해명의 기회 따위는 없었다. 황녀 대신 잡힌 인질일 뿐이었다.
이스밀은 1년이나 갇혀 있었고 그 동안 군대가 탑의 도시를 비롯해 제국 곳곳을 백방으로 수색했지만 파비트라는 흡사 땅 밑으로 꺼져버리기라도 한 듯했다.
본래 황제를 비롯한 파비트라의 형제들은 파비트라의 생사에 큰 관심이 없었다. 다만 불경하게도 황궁에 침입해 황녀를 납치한 자를 벌해야만 황가의 위신이 설 터라 수색이 1년이나 계속되었을 뿐이었다.
황제의 인내심이 다하자 마침내 파비트라는 죽었다고 공포되었고, 얼마 후 이스밀도 석방되었다.
이스밀은 탑의 도시로 돌아가는 대신 오스테라로 갔다. 그곳에서 바닷가를 뛰어다니며 물고기를 잡던 맨발의 파비트라를 다시 만났다.
황궁에 침입해 파비트라를 납치했던 자들은 과연 이스밀과 그의 심복들이었다. 이스밀은 어느새 스물두 살이었지만 선황제가 짝 지워 준 파비트라를 줄곧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어린 황녀가 내란 상태나 다름없는 황궁에서 계속 살아남기 어려우리라고 판단하자 위험천만한 납치와 의심을 풀기 위한 1년간의 감옥 생활마저 감수했다.
파비트라 역시 아버지가 정해준 남편을 따라가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어려서 자유를 누려보았기 때문인지 어촌 소녀의 삶에도 쉽사리 적응했다. 그 무렵 황녀가 작살로 물고기를 잡는 솜씨는 노련한 어부들 못지않았다.
2년 뒤, 이스밀은 선황제의 명대로 열다섯 살이 된 파비트라와 결혼식을 올렸다.
황녀가 비단 예복과 금관 대신 단순한 흰옷에 블루데이지 화관을 쓰고, 갈매기와 고둥을 포함해도 하객이 스무 명 남짓했다는 부분은 선황제의 예상과 다른 점이었다. 기하르 총독조차 참석하지 않았다.
그 후 이스밀은 파비트라를 오스테라에 숨겨두고 두 도시를 오가는 이중생활을 했다. 발각됐다가는 탑의 도시가 잿더미가 될지도 몰랐기에 비밀은 완벽히 지켜져야 했다.
기하르 총독과 이스밀이 얼마나 철저했던지 심지어 이스밀은 탑의 도시에서 가짜 혼례를 치르고 가짜 아내마저 두었다.
그러나 곧 때가 왔다. 몇 년 후 샤미르 4세마저 승하하고 누로날 1세가 즉위하자, 도피 생활 중이던 카타니아 황녀가 어떻게 알았는지 은밀히 파비트라와 이스밀을 찾아왔던 것이다.
카타니아는 누로날을 밀어내고 넷째 황자 아말을 황제로 만들자고 했다. 이 일에 기하르 총독이 힘을 빌려준다면 황도를 탑의 도시로 옮기고, 이스밀에게는 재상 자리를 주겠다는 것이었다.
2화
황제와 맞선다는 것은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위험천만한 결심이었다. 이스밀은 망설였다. 그는 파비트라와의 행복한 삶을 도박에 걸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황녀로 태어난 파비트라가 이렇게 숨어서 촌 아낙네로 살다가 죽어도 좋은지는 그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그 사이 카타니아가 은밀히 파비트라를 꼬드겼다. 마침내 이스밀이 파비트라에게 황도로 돌아가고 싶으냐고 물었을 때 파비트라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 대답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이스밀은 파비트라의 권리를 찾아주기 위해 반역을 결심했다. 그러나 실은 그날 파비트라가 한 대답은 ‘황도에 있는 어머니를 보러 가고 싶다’는 뜻이었을 뿐이었다.
이스밀은 먼저 신분을 감추고 용병 대장을 가장해 군대를 모았다. 거사가 실패할 경우 분노한 황제가 탑의 도시까지 파괴하는 일은 막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스밀은 탑의 도시에서 자금을 융통하긴 했지만 그 사실조차 감추고 아말 황자만을 전면에 내세웠다.
새로 즉위한 누로날 황제는 이듬해, 전례대로 제국의 주요 도시들을 방문할 예정이었다. 황제가 탑의 도시로 행차할 때 도중에 습격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계획은 들어맞았다. 얼굴을 감춘 이스밀이 이끄는 군대는 호위병들을 섬멸하고 황제와 그 일가를 사로잡았다. 누로날 황제는 치욕을 피하기 위해 독약을 마셨으나 죽지는 않고 의식불명에 빠졌다.
소식을 들은 아말과 카타니아는 뛸 듯이 기뻐하며 당장 황도로 가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스밀은 망설였다. 이렇게 된 이상 황위를 반드시 아말 황자에게 줘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번 거사에서 아말은 명목상의 수장일 뿐 스스로 한 일은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뿐 아니라 훌륭한 황제가 될 자질도 없어 보였다. 아말은 거만해져서 이스밀을 용병 취급하며 무시했고, 파비트라마저 시골뜨기 주제에 나랏일에 끼어들 생각은 말라며 엄포를 놓았다.
누로날 황제에게는 어머니가 같은 두 누이가 있었다. 황녀들은 결혼한 뒤 황위 다툼에 끼어들지 않고 조용히 살아가고 있었다. 이스밀은 그 중에서 일찌감치 남편을 잃고 신전에서 살아가고 있던 페리사 황녀의 의향을 떠보았다.
그 사이 아말과 카타니아는 의기양양하게 황도로 향했다. 이스밀은 참견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말이 원로원에 나가 황제가 반역자들의 습격으로 죽었으니 자신이 그 뒤를 잇겠다고 선언하도록 기다렸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황도는 혼란에 빠졌다. 그 무렵 이스밀은 황도 근방에 이르러 천여 마리의 새를 잡아 그 발에 쪽지를 매어 황도로 날려 보냈다.
쪽지에는 누로날 황제를 습격한 반역자는 아말과 카타니아이며 황제는 살아 계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황도의 귀족과 중신들은 과거 카타할 황자의 정변 때부터 둘로 갈려 있었다. 누로날이 죽었다면 남은 황자가 아말뿐인 것은 분명했지만, 아말이 황제가 된다면 카타할의 정변 때부터 카타니아과 아말을 박해해 온 다수파는 목을 장담하기 어려운 지경이었다.
그런 가운데 날아든 쪽지의 내용은 그들에게 가뭄의 단비 같았다. 반역자를 당장 처형하라는 요구와 모함하지 말고 증거를 대보라는 항변이 날을 세우는 가운데 이스밀은 페리사 황녀에게 호위를 붙여 황도로 들여보냈다.
페리사 황녀는 원로원으로 들어가 황제께서 자신에게 뒷일을 부탁했다고 눈물 섞인 연기를 하면서 아말과 카타니아의 목을 치라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의식을 되찾은 누로날 황제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비록 눈은 떴되 말을 하지도, 움직이지도 못했지만 황제는 반역자가 누구냐는 질문에 아말을 노려보았다.
아말은 처형되었다. 그는 죽을 때까지도 누가 자신을 몰락시켰는지 깨닫지 못했다. 황위가 본래 자기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이스밀이 어떤 식으로 군대를 모으고 정변을 성공시켰는지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았던 대가였다.
카타니아는 용케 달아났다. 그녀는 어쩌면 이스밀의 계획을 조금쯤 눈치 챘던 것인지도 몰랐다.
누로날 황제는 얼마 안 가 죽었고, 페리사 황녀가 여제로 등극했다. 여제는 곧 예순인 데다 일찍 홀로되어 자식이 없었다. 그 점이 이스밀의 협상 조건이었다.
이스밀이 페리사를 여제로 만들어주는 대신, 여제는 파비트라를 후계자로 삼는다는 약속이었다.
이스밀은 파비트라의 권리를 찾아주고자 반역자가 되기로 했을 때, 동시에 파비트라를 여제로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리사를 먼저 내세운 것은 누로날 황제가 죽어가는 상황에서 같은 어머니의 소생인 페리사는 쉽사리 지지를 받겠지만 파비트라는 아니기 때문이었다.
이스밀의 계획은 잘 되어 가는 듯 보였다. 파비트라는 황도로 돌아와 어머니와 재회했고, 페리사 여제도 파비트라를 가르친다며 곁에 두었다. 이스밀은 전면에 나서지 않는 버릇대로 별다른 벼슬을 하지 않았다. 그것이 패착이었다.
여제는 탄신잔치를 기화로 동생인 베레사 황녀의 아들 베난을 황도로 불렀다. 그러더니 몇 달 뒤 느닷없이 베난과 파비트라의 혼약을 발표했다. 다시 말해 조카인 베난을 황제로 만들겠다는 뜻이었다.
그때까지 파비트라와 이스밀의 결혼 사실은 공식화되어 있지 않았다. 결혼하게 된 과정이 과정이니만큼 황위 계승자로서 파비트라의 입지를 생각해서 일단 숨기기로 했던 터였다.
파비트라가 황제가 된 뒤에 다시 정식 결혼식을 올려도 늦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니, 실은 여제가 먼저 그렇게 권유했었다.
혼약 발표 당시 이스밀은 탑의 도시에 가 있었다. 여제는 그것까지 고려했을 것이다. 뒤통수를 맞은 이스밀은 격분했다. 그러나 그가 갑자기 남편이라고 나선다면 파비트라를 언젠가 여제로 만드는 일은 물거품이 될지도 몰랐다.
때마침 기하르 총독이 죽었다. 여제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이스밀을 새 총독으로 임명했다. 거절한다면 반역자가 되는 것이고, 승낙한다면 황도에 갈 기회는 없었다.
이스밀은 총독 자리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파비트라에게 물고기를 잡는 작살 끄트머리의 쇳조각을 보냈다.
작살 조각을 받은 파비트라는 이스밀의 뜻을 알아챘다. 기다려라. 오스테라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때 파비트라는 세 번이나 탈출 시도를 하다가 붙잡혀 황궁에 갇혀 있었다. 파비트라는 대답 대신 결혼식 때 둘렀던 띠를 셋으로 잘라 두 조각을 보냈다. 띠를 받은 이스밀도 즉시 알아차렸다. 파비트라가 아이를 가졌음을.
파비트라의 임신 사실을 알고도 여제는 베난과의 혼인을 강행시켰다. 파비트라는 혼례까지는 받아들였지만 명목상의 부부임을 분명히 했다. 베난도 상관하지 않았다. 그로서는 어쨌든 황제만 되면 그만이었다.
페리사 여제가 모든 일을 서둘렀던 이유는 지병 때문이었다. 이듬해 병석에 누운 여제는 베난에게 황위를 양위했다.
만삭의 파비트라는 황후가 되었지만 이름뿐이지 사실상 아무런 권한도 없었다. 얼마 후 파비트라는 아들을 낳았다.
황손의 탄생이었지만 어느 누구도 기뻐하지 않았다. 베난 황제는 아이를 보러 오지도 않았다. 그는 이미 어떻게 하면 파비트라와 이혼할지 그것만 궁리하고 있었다.
이혼이라면 파비트라도 대 찬성이었지만 선황제인 페리사가 황제 부부가 이혼한다면 양위를 철회하겠노라고 엄포를 놓은 상태였다.
페리사는 비록 이스밀을 배신했지만, 파비트라의 자식을 황제로 만들겠다는 약속은 지키고자 했다. 다만 이스밀의 자식으로는 곤란하고, 베난과 파비트라가 화해해서 새 아이를 낳아야 했지만 그럴 가망은 전혀 없었다.
파비트라는 날이 갈수록 수척해졌다.
페리사의 내심을 알아차린 베난은 파비트라를 설득하는 대신 쉬운 길을 택했다. 그해 겨울, 선황제 페리사는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공식적으로는 지병 악화라고 알려졌다.
그리고 며칠 뒤, 파비트라는 황궁을 떠났다. 아기와 호위무관 알키미를 비롯한 시종 몇 명만을 데리고. 베난의 묵인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파비트라가 종적을 감춘 뒤 베난은 한 해가 안 가 새 황후를 맞으려 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반대가 거셌다.
파비트라의 생사를 모르며 심지어 황손마저 데려간 마당에 새 황후를 맞기보다는 수색에 집중해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파비트라가 이미 죽었을 것이라고도 주장해 보았지만 파비트라는 이미 장례까지 치러졌다가 돌아온 전력이 있었다. 이번에도 그러지 말라는 보장은 없었다.
베난 황제는 사라진 황손이 이스밀의 자식임을 밝혀버리고 싶었지만 그것만은 자신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격이라 차마 하지 못했다.
중신들과 귀족들이 파비트라를 찾는 이유는 사라진 황손뿐만이 아니었다. 파비트라는 몇 년 동안 명목뿐인 황후 노릇을 했지만 행동거지에는 흠잡을 데가 없었다. 그리고 모두가 그런 모습을 안타깝게 여겼다. 파비트라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더더욱 그랬다.
황제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막내딸이 조카뻘인 남편에게 무시당하면서 수척해진 모습으로 황후로서 위엄을 가지려고 버티는 모습은 안쓰럽기 그지없었다.
얼마 전, 베난 황제의 어머니인 베레사 황녀조차 죽었기에 파비트라는 샤미르 3세의 자식들 중 유일한 생존자였다.
샤미르 3세가 승하한 후 황자들 사이에서 죽고 죽이는 다툼이 계속되는 동안 사람들은 평화롭던 샤미르 3세 시절에 대한 향수가 짙어졌다. 그리고 파비트라는 그 시절의 마지막 상징 같은 존재였다. 어린 파비트라가 황제의 집무실에서 웃으며 뛰어다니던 그때야말로 최후의 황금기였다고 되뇌는 늙은 중신들이 많아졌다.
곧 있으면 누로날 선황제의 아들이 성년이 될 것이다. 그는 베난이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페리사의 간택을 받아 황위를 이은 것에 큰 불만을 품고 있었다. 황족들 사이에서 다시 한 번의 피바람이 예상되는 지금 샤미르 3세의 마지막 핏줄인 파비트라를 황후 자리에서 내친다면 베난에게 무슨 정당성이 있단 말인가?
하지만 베난에게 그런 사실은 안중에 없는 듯했다. 그는 중신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새 황후를 결정해 발표했다. 황후가 두 명이 되는 경우는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샤미르 3세의 두 황후도 첫 황후가 죽은 뒤 후궁이 둘째 황후 자리에 올랐다.
베난이 국혼을 강행한 직후, 파비트라는 탑의 도시에 들어섰다. 그때까지는 추적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탑의 도시를 피해 홀로 방랑해 왔다. 그 기간이 2년이었다. 아기는 어느새 훌쩍 자랐다. 그리고 파비트라는 오히려 건강해졌다.
이스밀이 달려 나왔을 때 남장을 하고 말을 비껴 탄 파비트라는 흡사 마적단의 일원 같은 모습이었지만 눈만은 반짝거렸다. 십여 명의 부하마저 뒤따르고 있어 정말 마적단이라고 해도 될 지경이었다.
이스밀은 그 모습을 보며 웃었다. 20년처럼 길었던 2년이, 얼굴을 맞대자 마치 이틀이었던 듯했다.
파비트라는 처음으로 이스밀에게 아들의 얼굴을 보였다. 그리고 이름을 달라고 했다. 그때까지 아기는 아명으로만 불리고 있었다. 이스밀은 아기에게 ‘이샤마’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3화
이스밀은 2년 동안 파비트라를 기다리고만 있지 않았다. 그는 파비트라가 돌아오는 날 시작할 일을 준비해놓고 있었다. 바로 두 번째 반역이었다.
탑의 도시에는 2천 명의 상비 군대가 있었다. 나디르가 그들을 이끌었다. 나디르는 이스밀이 파비트라를 데려오기 위해 황궁에 침투할 때도 함께했던, 이스밀의 심복이자 친우였다.
유사시 모병 가능한 3천여 명의 시민 군대도 있었다. 그러나 이 모두를 합친다 해도 황도와 정면대결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비밀리에 행군해야 할 거리도 너무 멀어 사실상 동원하기 힘든 군대였다.
예전 같은 기습도 불가능했다. 베난 황제는 누로날 황제의 죽음을 반면교사로 삼은 듯 황도 밖으로는 나올 생각도 하지 않았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 힘을 모아야 했다. 이스밀은 오스테라 총독을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오스테라는 본래 서쪽 대륙과의 교역으로 번성한 도시였다. 그러나 아라야니 1세 시절, 갑자기 교역을 금지당한 후 비밀리에 이면 교역을 계속하다가 발각당해 무거운 세금에 시달리고 있었다.
오스테라 총독은 지원을 하는 대가로 교역권을 주겠다는 이스밀의 제안을 받아들였지만, 지원 사실을 비밀에 부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마치 예전에 이스밀이 그랬던 것처럼. 이스밀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오스테라가 제공한 황금은 황도의 고관들을 포섭하는 데 제격이었다. 그들의 비호를 얻자 은밀히 용병을 모아 길렀다. 황도 남쪽의 아므르타라는 소도시는 그런 일에 딱 맞는 장소였다.
아므르타는 검은 사막의 초입에 위치한 남방 무역의 중심지였다. 죽처럼 끓는다는 검은 사막의 더위와 ‘용의 뒤척임’이라고도 불리는 지진을 두려워해 아예 접근도 않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선입견과 달리 아므르타는 꽤 견딜 만한 기후였다.
그 사실이 잘 알려지지 않는 이유는 아므르타를 세우고 지배해 온 자들이 나라야나들이기 때문이었다. 아므르타에서 시작되는 무역로 ‘용의 길’을 독점해 온 나라야나들은 온 대륙의 상인들이 아므르타로 몰려들기를 바라지 않았다.
이스밀이 아므르타의 비밀을 알게 된 이유는 파비트라가 데려온 호위무관 알키미 덕택이었다. 아므르타 태생인 알키미는 제국군에 지원했지만 출신지 때문에 차별을 받다가 오히려 그 덕택에 어린 파비트라 황녀의 호위병으로 뽑혔다.
파비트라가 황궁에 침입한 이스밀을 따라갈 때 알키미는 황녀의 뜻을 받들어 떠나도록 도와준 뒤 자취를 감췄다. 이후 황궁으로 돌아온 파비트라는 다시 알키미를 찾았고, 황후의 호위무관이 된 그는 파비트라가 두 번째로 떠날 때 이번에는 직접 따라나섰다. 그리고 방랑 생활을 하는 2년 동안 사실상 파비트라의 생존을 책임졌다.
아므르타를 거점으로 삼아 군대를 기르면서 나디르는 탑의 도시의 군대를 조금씩 아므르타로 이동시켰다. 그런데 그런 음모를 눈치 챈 자가 있었다. 어느 날 날아든 편지를 읽은 나디르는 일의 심각성을 알아채고 이스밀에게 급히 전령을 보냈다.
편지에는 ‘귀인께서 친히 기르신다는 말들이 검은 물을 마셔 그토록 기름지다고 들었습니다. 말의 안장은 물론 보라색이겠지요? 한번 초대해 주신다면 영광으로 알겠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편지를 보내온 자는 베로에 출신의 귀족, 가로말의 아들인 열아홉 살의 류이진이었다. 새파랗게 젊은 그는 귀족이라는 것만 빼면 아무런 관직도 없는 한량이었다. 그렇기에 그간 포섭은커녕 접촉 대상에도 들어 있지 않던 자였다.
그런 자가 이스밀이 하려는 일을 간파하고 있다니 보통 일이 아니었다. 검은 사막에는 종종 먹을 수 없는 검은 물줄기가 흘러나와 개천을 이루곤 했다. 보라색의 열대수련은 이스밀의 가문의 문장이었다.
이스밀이 달려와 류이진을 만나기까지는 두 달이나 걸렸다. 그 전에 나디르가 먼저 만나려 했지만 류이진이 거절했다. 게다가 만나는 장소는 제멋대로 아므르타로 지정했다.
이스밀도 나름대로 류이진이 두 달이나 기다려준 것으로 보아 황제에게 고할 작정은 아니라는 판단을 했다. 그래서 어떻게든 포섭해 보자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만약 되지 않으면 류이진을 인질로 잡고 바로 거병하는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아므르타에서 만난 류이진은 한 번 더 이스밀을 놀라게 했다. 류이진은 황제의 성격이며 습관, 건강 상태, 거둥 일정, 근위대의 약점 등을 완전히 꿰뚫고 있었다. 한편이 될 법한 자들, 그렇지 않은 자들, 배신할 자들을 일일이 지적한 인명록도 보여주었다. 심지어 거사 날짜까지 제멋대로 정해 왔다.
이스밀이 좀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하자 류이진은 이 날짜에 거병하지 않으려면 그냥 황제 편으로 돌아서겠다고 해서 이스밀을 한층 당황하게 만들었다.
확실히 그 나이답게 어린애 같은 면모도 있었지만 류이진은 빼어난 지략가였다. 대화를 해볼수록 이스밀도 그의 진가를 알아보았다. 또한 정보 운용 능력이 엄청났는데 그건 류이진뿐 아니라 그의 가문 자체가 그렇다고 했다. 베로에 사람은 예로부터 첩자를 쓰는 데 능숙하다는 평판이 있었다.
그리고 류이진이 이스밀의 편에 합류하기로 한 것도 나름 정보를 수집한 끝에 내린 전략적인 결정임을 알았다. 비록 천재적이긴 해도 류이진은 충성심이 강한 유형은 아니었다.
다시 말해 날카롭긴 하되 내 편도 찌를 수 있는 칼이었지만 이스밀은 류이진을 받아들였다. 다만 거사 날짜만은 들어주지 않았다. 이후 류이진은 뭔가 문제만 생기면 거사 날짜를 바꿔서 그렇다고 생떼를 써서 이스밀의 속을 긁어댔다.
나중에 파비트라를 만났을 때는 어린 이샤마를 보며 ‘황자께서 황녀였어야 제가 부마가 되는 건데’라고 해서 파비트라의 넋을 빼놓기도 했다.
베난 황제는 스스로 악수를 두는 중이었다. 성년이 된 누로날 황제의 아들 다할을 의식한 나머지 정무조차 뒷전으로 돌린 채 황제 우상화에 몰두했지만 별 성과가 없었다. 새 황후와의 사이에서는 자식이 태어나지 않았다.
억지 누명을 씌워 다할을 황도 밖으로 추방했는데 반대 여론이 들끓자 이름난 가문 출신들을 반역자로 몰아 처형했다. 다할이 처형을 피해 달아나자 황족인 그의 목에 현상금까지 내걸었다.
이스밀은 그 상황을 이용하기로 했다. 용병대장의 이름을 가장해서 다할을 붙잡았다면서 황도로 압송하겠다고 고했다. 베난 황제가 반색하여 목을 빼고 기다리는 가운데 황도 근처에 이르러 갑자기 다할을 놓쳤다고 하며 북문으로 달아났다고 알렸다.
황제의 엄명으로 황도 수비군이 모조리 북문 밖으로 나갔을 때 나디르가 이끄는 군대가 남문의 방어를 쉽사리 깨부수고 안으로 들어가 황궁을 포위했다. 시종을 가장하고 있던 류이진의 첩자들은 때맞춰 황제를 억류했다.
파비트라는 원로원을 소집하여 베난 황제가 페리사 선황제를 독살했다고 고발했다. 그리고 페리사가 피를 토한 옷을 보였다. 페리사가 갑자기 죽었을 때 곁에 있던 파비트라가 미래를 생각해 챙겨 두었던 것이었다.
핏자국 묻은 천을 씹어 먹은 염소들이 쓰러져 죽자 독살 혐의는 분명해졌다. 이미 당시에도 페리사의 죽음에 의혹이 있었던 데다, 베난이 페리사가 죽은 직후 파비트라를 내치고 새 황후를 맞았던 행동 때문에 더 이상의 증명은 필요치 않았다.
베난은 마지막 발악으로 자신이 파비트라를 내쫓으려 했던 것은 파비트라가 이스밀과 간통을 저질렀기 때문이며 이샤마도 자신의 자식이 아니라고 폭로했다.
파비트라는 살기 위해 제 자식조차 부인하는 자가 잠시나마 남편이었다면서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면서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이런 상황을 예상한 이스밀이 미리 말해둔 대로였다.
파비트라는 황녀이므로 황제가 될 자격이 있었지만 그 후계자는 반드시 아버지도 황족이어야 했다. 그러므로 이샤마는 이스밀이 아닌 베난의 아들이어야만 했다. 그랬기에 페리사도 예전에 파비트라와 베난의 결혼을 강행했던 것이었다.
과거 자식이 없었을 때는 파비트라가 이스밀과 결혼하고 다른 황족을 후계자로 삼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그들에게는 이샤마가 있었다. 둘 다 사랑하는 아들이 장차 황제가 되기를 원했다.
비밀을 아는 단 한 사람, 페리사 선황제는 죽고 없었다.
만약 이샤마가 베난의 아들이 아님이 밝혀진다면 황위는 다할에게 넘어갈 가능성이 높았다. 비록 지금은 다할이 숨어있지만 베난이 폐위된다는 소식을 들으면 당장이라도 나타날 게 뻔했다.
물론 원로원의 추인을 포기하고 스스로 황제임을 선언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유력 가문들로 이루어진 원로원의 도움과 지지 없이는 누구라도 이름뿐인 황제에 불과했다. 심지어 시작부터 평판을 잃으면 앞으로의 국정이 매우 어려워질 것이 뻔했다.
며칠 동안의 심의 끝에 원로원은 베난을 폐위하는 데 합의했다. 그러나 여전히 다할은 나타나지 않았다.
마침내 원로원의 지지를 얻은 파비트라는 황제로 즉위했다. 베난은 비록 선황제를 독살한 죄가 있었지만 잠시나마 황제였으므로 유배를 보내는 것으로 처형을 대신했다.
파비트라는 가장 먼저 이샤마를 황태자로 책봉했다. 그러나 그 뒤가 문제였다. 이스밀과 정식 부부가 되는 것은 고사하고 관직을 줄 수도, 가까이 둘 수도 없었다. 그랬다가는 이샤마가 이스밀의 아들임이 밝혀지고 말 것이었다. 원로원의 귀족들은 벌써부터 파비트라와 결혼할 황족을 고르는 중이었다.
파비트라를 위해 늘 그림자 노릇을 자처했던 이스밀은 이제 정말로 그림자에 불과한 존재가 될 처지였다.
4화
황궁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었다. 파비트라 여제와 이스밀이 그토록 주의했는데도 몇 달이 흐르자 사람들은 둘 사이에 뭔가가 있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문제는 황태자 이샤마였다. 아직 어린 이샤마는 감정을 숨길 줄 몰랐다. 이스밀을 아버지로 부르지 않도록 호칭은 겨우 단속해 놓았지만 자연스러운 호감마저 감출 수는 없었다. 아이는 자신을 진정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본능적으로 알아차리기 마련이었다.
어쩔 수 없이 파비트라는 이샤마가 이스밀과 만나지 못하도록 떼어 놓아야 했다. 이스밀도 동의한 일이었지만 필요한 일이라 한들 고통스럽지 않을 순 없었다.
그것만으로도 부족해서 이샤마가 유배 중인 베난을 방문하도록 하기도 했다. 베난에게 미리 경고해 두었기에 넌 내 아들이 아니라는 둥 하는 말을 듣지는 않았지만, 자신에게 털끝만큼도 관심이 없는 사람을 아버지라고 불러야 하는 아이도 마찬가지로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파비트라와 이스밀은 점점 더 만남을 줄였다. 한 달에 몇 번, 그것도 스쳐가며 몇 마디 나누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수천 개의 눈이 둘을 주시하고 있었다.
중신들은 파비트라 여제와 결혼할 후보로 샤미르 3세의 조카, 샤미르 4세의 외손자 등을 골라 왔지만 파비트라는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거절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거절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황제에게는 많은 자식이 있어야 했다.
그 무렵 도망쳤던 다할이 돌아오자 중신들은 반색하며 다할을 첫째 후보로 올렸다. 다할도 물론 찬성이었다. 분위기는 멋대로 무르익어 갔다.
결국 정면 돌파하는 수밖에 없었다. 파비트라는 비록 유배중이긴 하나 자신의 남편은 아직까지도 베난이며, 베난이 죽을 때까지는 결혼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베난은 두 황후를 두려 했지만 자신은 그러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시는 결혼 이야기를 꺼내지 말라고 엄명을 내렸다.
파비트라가 황제가 된 이래 처음으로 단호한 태도를 보이자 결혼 이야기는 수그러들었다. 그러나 다할은 포기하지 않고 틈을 엿보았다. 예전 페리사 선황제 때부터 파비트라를 보아 온 다할은 파비트라와 베난 사이에 한 번도 애틋한 사랑이 없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파비트라가 저렇게 버티는 이유는 무엇인가?
의심을 품고 바라보는 다할의 눈을 피하기는 쉽지 않았다. 이스밀은 아예 황도 밖으로 거처를 옮겼다. 류이진이 첩자로 쓰는 시종들을 통해 편지만 드문드문 주고받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그 무렵 비파 항구에서 폭동이 일어나 총독이 피살되는 일이 벌어졌다. 파비트라의 치세에 첫 번째로 닥친 큰 문제였다.
진압을 두려워한 반란군은 죽은 총독의 학정을 적은 편지를 보내며 황제의 특사를 바랐다. 그러나 비슷한 일이 또 벌어지면 곤란했기에 그들의 요구가 옳든 그르든 그대로 들어줄 수는 없었다.
그때 류이진은 이스밀에게 진압군 총대장이 되라고 조언했다. 제국에 충직한 모습을 보여 중신들의 의심을 벗자는 것이었다. 이스밀도 이렇게 지낼 바엔 잠시 떠나 있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해 여제 앞으로 나아가 원정을 자원했다. 파비트라도 입술을 깨물며 윤허하는 수밖에 없었다.
비파 항구에 이르러 첫 전투가 벌어졌다. 평민들이 뭉쳐 급조한 군대이니 오합지졸이겠거니 여겼던 이스밀은 반란군과 부딪쳐보고 조금 놀랐다. 비록 훈련이 부족한 군대였지만 전술 운용은 상당한 수준이었다. 게다가 사기도 드높았다. 이는 상대 군대에 범상치 않은 지휘관이 있음을 뜻했다.
류이진의 첩자들이 항구 근방의 정보를 모아왔다. 반란군의 우두머리는 어부에 불과했지만 그를 돕고 있는 자가 은퇴한 장군 메레디스라고 했다.
메레디스는 샤미르 3세가 아끼던 군인으로 이니스테르와의 북방 전쟁에서 여러 번 공을 세웠다. 그러나 샤미르 3세가 죽은 후 황자들이 황좌를 놓고 피 튀기는 다툼을 벌이자 환멸을 느끼고 고향인 비파 항구로 돌아가 버렸던 인물이었다.
류이진은 메레디스가 용장이며 전술에도 능하지만 얕은 속임수를 경멸하기 때문에 오히려 거기에 휘말리기 쉬운 성미라고 분석했다. 또한 황도를 적으로 돌릴 만큼의 동기가 약하며 샤미르 3세에 대한 충성심이 남아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류이진은 비파 항구 주위의 촌락들에 첩자를 풀어 소문을 퍼뜨렸다. 새로 즉위한 파비트라 여제가 아버지의 충신이던 메레디스 장군을 황도로 부르고 싶어 한다는 소식을 먼저 깔고, 장군도 기꺼이 돌아가고 싶어 한다든가, 이미 답신을 보냈다든가, 장군이 거절했지만 마음이 흔들렸다든가, 이 문제로 장군과 반란군의 우두머리가 냉전을 보이고 있다든가 하는 이야기가 단계적으로 퍼져나갔다.
한 가지 소문이었다면 강하게 부인하는 것으로 마무리될 일이었으나 소문의 내용이 복잡했기에 해명을 하려 해도 어디부터 어디까지 해야 할지가 모호했다. 그리고 구구절절 해명하려면 무척 구차한 느낌을 줄 것이기에 류이진은 메레디스가 아무 해명도 하지 않으리라고 예상했다.
류이진이 생각한 대로였다. 소문이 퍼지면서 살이 붙어 마침내 해명하지 않으면 안 될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메레디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두 번째 전투에서 이스밀은 크게 승리했다. 반란군의 규율은 흐트러져 있었다. 누구라도 내 편이 아닌 듯한 지휘관의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기 마련이었다. 지금쯤 메레디스 장군도 반란군에서 서서히 마음이 떠나고 있을 터였다.
류이진은 그 즈음을 노려 메레디스에게 파비트라 여제의 이름으로 밀서를 보내자고 했다. 이스밀이 황제의 이름을 함부로 사칭할 수 없다고 하자 류이진은 ‘이스밀 경이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의 유일한 장점이 이건데 뭘 그리 딱딱하게 구느냐’며 낄낄 웃었다.
밀서를 받은 메레디스 장군은 이스밀과 만나고 싶다고 답했다. 이렇게 쉽사리 포섭될 줄은 몰랐기에 조금 뜻밖이기도 했다. 은밀하게 마련한 회담 자리에 나타난 메레디스는 이스밀을 한참 동안 뜯어보더니 ‘샤미르 3세 폐하께서 막내사위는 참 잘 고르셨다’고 말했다.
당황한 이스밀이 그건 다 지난 일이라고 강변했지만 메레디스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는 이샤마 황태자가 이스밀의 아들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메레디스는 일찌감치 은퇴하고 무료하게 지냈기에 오히려 변방의 움직임을 더 잘 느껴왔다. 이스밀이 1차로 아말 황자를 내세워 모았던 군대에서 용병대장을 가장했던 이스밀이 주동자임을 일찌감치 알았을 정도였다.
2차 거사를 위한 군대는 멀리 아므르타에서 키웠던지라 알지 못했지만, 파비트라가 황제가 된 것을 보고 추리로 알았다고 했다. 이스밀이 만든 일임을.
메레디스는 이스밀이 과거 어린 파비트라를 납치했을 때까지만 해도 황도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때 그는 파비트라를 데려간 사람이 이스밀임을 확신했고, 이스밀이 파비트라를 위해 감옥살이까지 감수하는 것을 보고서 황녀를 맡겨도 되겠다고 생각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메레디스는 샤미르 3세의 충신이었던 만큼 황제가 마지막으로 사랑했던 어린 황녀를 아끼는 마음이 컸다.
메레디스가 이렇게까지 나오자 이스밀도 더는 부인할 수가 없었다. 메레디스는 이스밀이 왜 파비트라와 정식으로 결혼하지 못하는지도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메레디스는 이어 비파 항구의 반란 원인에 대해 말해주었다. 그러면서 황제의 친서를 직접 써도 될 정도라면, 하고 일침을 가하며 황제에게 주청해 반란군의 협상 조건을 일정 정도 받아들이게 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스밀이 ‘지금 나를 협박하는 거요?’라고 묻자 메레디스는 ‘아니오. 경께서는 이 자리에서 나를 죽인다는 선택을 할 수 있소’라고 답했다.
메레디스의 말이 맞았다. 이스밀의 비밀을 이용해 비파 항구의 반란군을 구하려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적어도 메레디스는 자신의 목숨을 걸었다.
이스밀은 잠시 망설였다. 그러더니 말했다. ‘이번 회담은 장군께서 이겼소.’
가장 중요한 비밀을 알고 있는 적은 죽여서 입을 다물게 하거나, 한 편으로 만드는 수밖에 없었다. 죽이는 쪽이 더 안전했지만 이스밀은 메레디스의 인품을 믿어보기로 했다.
그러자 류이진이 조건을 내놓았다. 요구를 들어주는 대신 메레디스가 황도로 가서 여제를 보필해 달라는 것이었다.
메레디스는 잠시 생각하더니 그렇다면 대신 이스밀이 비파 항구의 총독이 되어 달라고 요구했다.
류이진은 그것도 좋은 생각이라고 했다. 베난이 갑자기 죽지 않는 한 파비트라가 다할과 결혼할 일은 없으니 시간을 두고 파비트라의 황권이 자리를 잡을 때까지 기다려보자는 것이었다.
소식을 들은 파비트라 여제는 그들의 뜻을 모두 들어주었다. 첫 번째 반란 진압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메레디스는 황도로 가고, 이스밀은 비파 항구에 남았다.
몇 년이 흘러갔다. 파비트라는 사람들의 상상 이상으로 훌륭하게 황제의 직무를 수행했다. 샤미르 3세를 오래 모신 메레디스의 조언은 큰 도움이 되었다.
이스밀 또한 비파 항구를 훌륭하게 다스렸다. 그러나 황도에는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비파 항구의 문물이며 풍습은 제국의 중심부와 많이 달랐다. 그는 최선을 다해 비파 항구를 이해하고 보살피려 했다. 그렇게 일에 파묻혀 옛 일을 잊어보려 했다. 수 년 동안 그러고 있자니 파비트라와 함께했던 나날은 꿈이었던 듯하기도 했다.
그 사이 이샤마 황태자는 소년으로 자랐다. 어느 날, 파비트라가 문득 이스밀의 이야기를 꺼내보니 이샤마는 이스밀이 누구인지 잘 기억하지도 못했다. 파비트라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이제 황권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으니 어떻게든 가족을 다시 합치고 싶었다.
파비트라는 옛 황제의 전통을 살려 제국의 대도시들을 순방하겠노라고 했다. 비파 항구는 세 번째 순방지였다.
여제의 어가가 비파 항구 근처에 이르자 총독인 이스밀이 직접 맞이하러 나왔다. 파비트라는 어가의 휘장을 젖히라고 명했다. 몇 년 만에 마주본 두 사람은 양쪽 다 얼굴이 해쓱해져 있었다.
파비트라와 이스밀은 웃지도 못한 채 의례적인 치하와 겸양을 주고받았지만 열렬한 시선만은 떨어질 줄을 몰랐다. 류이진이 보다 못해 헛기침 소리를 내고서야 이스밀은 눈을 내리깔며 어가를 도시로 안내했다.
5화
비파 항구의 총독 관저에서 황제를 위한 잔치가 열렸다. 그날 파비트라는 예전과 달리 이스밀을 가까이 앉게 하고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황태자가 어떻게 자라고 있다는 얘기도 했다. 너무나 스스럼없는 태도여서 이스밀이 오히려 사람들의 눈치를 살폈다. 영문 모르는 사람들은 황제께서 술을 좀 드셔서 그런가 보다 생각했을 정도였다.
이윽고 침소로 들어간 파비트라는 밤이 깊어질 무렵 은밀한 신호를 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류이진이 직접 시종의 옷을 가지고 왔다. 옷을 바꾸어 입자 류이진이 방 한쪽의 나무 패널을 걷어내고는 ‘폐하, 송구하오나 신발을 벗어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패널 뒤로는 한 명이 지나가기에도 좁아 보이는 긴 통로가 보였다.
신발을 벗어야 하는 이유는 금세 알 수 있었다. 통로의 한쪽은 나무로 된 얇은 벽이었는데 낮에 수많은 사람들이 머무는 방들을 차례로 거치며 이어졌다. 본래 비밀 통로라기보다는 사람들의 밀담을 엿듣기 위한 용도였다. 이런 곳을 소리 없이 지나가려니 신발을 벗을 수밖에 없었다.
미로처럼 이어진 통로를 따라가 어느 외딴 방에 이르렀다. 류이진이 절을 하며 들어가시라고 했다. 파비트라가 혼자 안으로 들어가자 이스밀이 기다리고 있었다.
파비트라가 빙그레 웃었다. ‘당신을 만날 땐 늘 맨발이네.’
이스밀도 웃었다. ‘황도는 물고기를 잡기에 좋던가?’
밤은 짧았다. 새벽녘이 되자 류이진이 문을 두드렸다. 그는 밤새 그 앞을 지키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파비트라는 떠나기 전에 말했다.
“우리도 이제 슬슬 결혼이란 걸 해보면 어떨까?”
“저 오스테라의 바닷가에서부터, 그대는 이미 내 아내였지 않나.”
파비트라는 ‘아내 노릇은 영 못한 것 같은데.’라고 말하며 방을 나섰다. 이스밀은 아직도 우려하는 듯했다. 침소로 돌아가면서 파비트라는 내일 이스밀에게 자신이 지금껏 얼마나 잘해냈는지 설명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스밀은 너무 변방에 있어 자세히 모르는 것이리라.
이때까지만 해도 파비트라는 자신이 새 황제로서 완전히 자리를 굳혔다고 믿고 있었다.
이튿날은 비파 항구의 호족인 바르토크가 황제를 안내해 근방의 마을들을 돌아보기로 되어 있었다. 이스밀이 황제가 임명한 총독이라면 호족들은 여전히 그 지역의 실세들이었다. 일생 한 번 겪기도 어려운 황제의 거둥이니 한 번쯤 모실 기회를 주어야 뒤탈이 없었다.
파비트라는 바르토크와 함께 비파 항구 곳곳을 돌아보고 풍광이 좋기로 유명한 바닷가에 이르렀다. 바르토크는 절벽 위에 세워 놓은 정자 망루를 가리키며 마침 해질녘인데 저곳에 올라가면 근사한 낙조를 볼 수 있으나 계단이 가파르므로 오르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파비트라는 예전에 오스테라에 살았던 기억 때문에 바다를 좋아했으나 내륙의 황도에서 지내게 된 후로 가볼 기회가 없었다. 이스밀과 가장 행복하던 시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바닷가에서 낙조를 받으며 놀던 기억이 떠오른 파비트라는 흔쾌히 올라가보겠다고 했다.
계단은 과연 좁고 험했다. 늙은 바르토크는 물론이고 시종들이 하나 둘 처지기 시작하자 파비트라는 오히려 그들을 앞질러갔다. 파비트라가 정자에 이르렀을 때 황제보다 먼저 올라온 시종은 호위무관 네 명뿐이었다. 후열에 물러나 있던 이스밀이 소식을 듣고 곧 뒤따라 올라왔다.
파비트라와 이스밀은 나란히 정자 가장자리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았다. 행복감은 아주 잠시였다. 해를 정면으로 보아 시력이 흐릿해졌던 순간이었다. 어디선가 바람을 가르는 소음이 울렸다. 바다 쪽에서 무언가가 날아온다 싶었을 때 파비트라는 갑자기 뒤로 넘어졌다. 이스밀이 그녀를 넘어뜨리며 덮쳐누른 것이었다.
파비트라는 경악한 표정으로 이스밀의 얼굴을 보았다. 그러다가 이스밀의 표정이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제야 좌우를 보니 수십 개의 화살이 기둥에 꽂히거나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시종들 중 세 명이 쓰러졌고 나머지는 바닥을 기어오며 소리치고 있었다. ‘반역이다!’
호위병과 시종들이 뛰어올라왔다. 파비트라는 일어나려 했다. 그러다가 옷이 축축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슴 언저리가 피범벅이었다.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이스밀의 피였다. 등을 꿰뚫은 화살의 촉이 이스밀의 가슴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이스밀은 마지막 힘을 짜내어 ‘여기서 계속 기다릴 테니, 가라’고 말하고는 숨이 끊어졌다.
파비트라는 석상처럼 굳어져서 이스밀의 시체를 내려다봤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때 계단 쪽에서 류이진이 뛰어올라왔다. 그는 쓰러진 이스밀을 보더니 눈이 커졌지만 재빨리 생사를 확인하고는 파비트라에게 왔다. 그는 고개를 숙여 보이며 ‘불경을 용서하십시오’라고 말하고는 파비트라의 양팔을 붙잡아 일으켰다.
“바르토크가 반역했습니다. 건너편 절벽에 미리 궁수를 매복시켰던 모양입니다. 계단 아래쪽은 반역자들이 포위했습니다. 폐하의 군대는 그 뒤에 있어서 당장 도움이 안 됩니다. 일단 숲으로 피신하셔야 합니다. 걸을 수 있으십니까?”
파비트라가 대답 없이 이스밀만 내려다보고 있자 류이진은 이를 악물더니 파비트라의 어깨를 붙들고 흔들었다.
파비트라가 잠시 후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이스밀은…….’
류이진이 답했다. ‘황송하오나 지금은 모실 수가 없습니다.’
살아남은 호위무관은 세 명에 불과했다. 알키미가 있었다면 큰 도움이 되었겠지만 그는 이샤마 황태자를 호위하기 위해 황도에 남았다. 황제가 황도를 비울 때는 황태자의 안전도 중요한지라 파비트라가 그렇게 명령했었다.
그때 계단 아래쪽에서 불길이 일어났다. 더 머물 시간이 없었다. 숲으로 내려가는 길은 키를 넘는 낭떠러지였다. 류이진이 부축하려 했지만 파비트라가 뿌리쳤다. 파비트라는 이스밀의 이마에 입을 맞춘 뒤 그의 허리에서 검을 풀어 움켜쥐더니 거추장스러운 긴 치마의 아랫단을 찢어냈다. 그리고 혼자 숲으로 뛰어내렸다. 무관들은 물론 류이진도 깜짝 놀랐다.
그들이 숲으로 나아가는 동안 불길이 정자와 죽은 자들을 차례로 삼켰다.
아래쪽 마을로 가서 호위병들과 만나는 방법도 있었으나 이미 그들이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파비트라는 쉬워 보이는 해답에 집착하지 않았다. 대신 바다로 내려갈 길을 찾으라고 명했다.
험한 바윗길이 이어졌으나 파비트라의 움직임에는 조금도 어려움이 없었다. 적들이 나타나자 심지어 검을 뽑아 싸웠는데 상상도 못하던 실력인지라 무관들이 크게 당황했다. 그들 모두는 여제가 검을 잡을 줄 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바닷가의 어부들은 뜻밖에도 황제를 도우려 했다. 비파 항구 전체가 반역 도당은 아닌 듯했다. 젊은 어부 한 사람이 자신은 가족이 없으니 뒤탈이 없다면서 자원해서 황제 일행을 태우고 바다로 나아갔다. 며칠 동안 항해한 끝에 마하데비에 다다르자 파비트라는 어부에게 끼고 있던 팔찌와 ‘아게우스’라는 이름을 하사했다.
일단 탑의 도시로 가기로 했다. 파비트라도, 류이진도 의견이 같았다. 그곳으로 가면 이스밀의 친구이자 충복인 나디르가 있었다. 탑의 도시 출신인 이스밀이 비파 항구의 총독이 되자 파비트라는 대신 나디르를 탑의 도시의 총독으로 임명했었다.
나디르의 휘하 군대는 정예군으로 유명했다. 그들과 합류한다면 비파 항구의 반역자들쯤은 쉽사리 진압할 수 있을 듯했다.
반역자들이 무엇을 노리는지는 불분명했다. 예전에 이스밀이 진압했던 반란은 알고 보니 비파 항구의 호족들이 뒷조종한 것이었고, 그들이 자나 깨나 원하는 것은 독립이었다. 그러나 독립을 원한다고 황제와 총독을 암살하는 것은 제국 전체를 적으로 돌리는 셈이니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았다. 아무래도 배후에 다른 세력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류이진은 다할의 음모일 가능성을 제기했지만 파비트라는 다할이 그렇게까지 야심차고 행동력이 있다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어쨌든 둘은 논쟁을 벌이지는 않았다. 탑의 도시에 가보면 다 알게 될 일이었다.
그런데 남하하던 도중 들른 쉼터에서 한 여행자가 놀라운 소식을 전해 주었다. 탑의 도시가 이미 함락되었다는 것이었다.
상대 군대가 누구냐고 묻자 더 놀라운 대답이 돌아왔다. 오스테라 군이었다.
큰 충격을 받은 파비트라 일행은 그날 더 나아가지 못하고 쉼터에 머물렀다. 밤이 깊었을 무렵 파비트라가 류이진을 불렀다.
황제가 머물 곳이라고는 믿기 힘든 누추한 방에서 파비트라는 생각에 잠겨 있었다. 류이진이 맞은편에 앉자 파비트라가 말했다.
“난 경이 어떤 종류의 사람인지 알아. 이제 짐을 계속 따라야 할지, 그만 버리고 떠나는 편이 현명할지 고민하고 있겠지. 이해해. 경이 처음에 섬기고자 찾아왔던 주군은 이스밀이었지 나는 아니었으니까.”
류이진은 처음에 당황한 표정을 지었으나 곧 눈을 내리깐 채 듣기만 했다. 이스밀은 처음 류이진을 받아들일 때부터 그의 충성심에 대단한 기대를 걸지 않았다. 파비트라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후 류이진은 생각 이상으로 최선을 다해 이스밀을 보필해 왔다. 처음에 의심한 것이 미안해질 정도였다.
그러나 사람의 본질은 쉽게 변치 않는 법이었다. 파비트라는 이스밀이 죽은 후로 줄곧 류이진의 태도를 살펴 왔다. 현재 파비트라가 유일하게 의지할 상대인 류이진이 언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지, 시시각각 재고 있었다.
이윽고 류이진은 고개를 들며 말했다.
“폐하의 말씀을 부인하진 않겠습니다.”
6화
그러자 파비트라는 웃었다. 류이진은 웃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황송해서 어쩔 줄 모르는 표정도 아니었다. 그보다는 이처럼 안 하느니만 못한 이야기를 꺼낸 뒤에 파비트라가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한 눈빛이었다.
그간 류이진에게 파비트라는 비록 황제였지만 동시에 이스밀의 아내에 불과한 존재였다. 파비트라가 가졌던 모든 것은 이스밀이 무에서 창조해냈다. 오직 혈통을 제외하고는. 수년간 격동의 중심에 서 있었건만 파비트라 개인의 자질이나 성품은 끼어들 기회도 없었다.
그랬기에 류이진조차도 파비트라가 어떤 사람인지 뚜렷하게 알고 있지 못했다. 아니, 알고는 있었다. 남편에게 순종하는 아내로서. 그리고 남편이 이뤄준 자리를 자신의 권리로 착각해 엉뚱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정도의 현명함은 갖춘 여자로서.
“이스밀이 떠나면서 옛 계약은 끝이 났어. 하지만 짐에게도 경이 필요해. 그러니 새 계약을 맺고 싶군. 물론 지금 경을 붙잡을 만한 조건을 내걸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어. 다만 경에게도 당장 택하고픈 새 주군이 없다면 짐에게 석 달의 시간을 주면 어떠한가? 석 달 후에도 경을 잡을 만큼 짐이 매력적이지 않다면, 떠나더라도 막지 않겠다.”
파비트라가 이 비슷한 이야기를 하리라고 류이진도 조금쯤은 짐작했다. 다만 석 달은 터무니없이 짧은 기간이었다. 그 사이에 파비트라가 황위를 되찾을 가망도, 최소한 전쟁 가능한 군대를 편성할 가망도 없어 보였다.
어쩌면 파비트라가 경험이 적어서 섣불리 저런 기간을 정했을지도 몰랐다. 어느 쪽이든 류이진에게는 나쁠 것이 없었다. 석 달만 버티면 배신자라는 비난을 듣지 않고 떠나도 좋다고 오히려 자비를 베푼 꼴이었다. 파비트라는 대체 석 달 동안 뭘 하려는 걸까?
류이진은 조건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스밀에 대한 마지막 도리로 석 달 동안은 충심으로 파비트라를 보좌해보기로 결심했다. 어차피 짧은 기간이었다. 그는 기적을 믿지는 않았지만, 행운의 연못에 동전을 던질 정도의 마음은 있는 사람이었다.
파비트라는 탑의 도시를 버리고 동북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비파 항구를 에돌아 북부로 이동하는 것만으로도 꼬박 한 달이 걸렸다.
그동안 시시각각 소식이 들려왔다. 파비트라 여제는 비파 항구에서 승하했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것도 비파 항구의 총독, 이스밀의 배신으로. 비파 항구는 스스로 이스밀을 처단했고, 새 황제의 자비를 바라는 마음으로 온 백성이 금붙이를 바쳐 여제를 위한 황금 관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황태자 이샤마가 새 황제가 되었지만 즉위식은 여제의 유해를 운구한 뒤로 미뤄졌다. 새 황제가 어렸기에 다할이 섭정 자리를 차지했다.
다할은 제일 먼저 재상 메레디스를 어장(御葬) 준비 총책임자로 임명하여 국정에서 떼어놓았다. 메레디스는 파비트라 여제가 제국 순방을 떠나 있는 동안 국정을 사실상 책임지고 있었다. 다할이 섭정으로서 권력을 휘두르려면 메레디스를 밀어내는 것이 급선무였다.
메레디스는 섭정의 명을 따랐지만 그 대신 알키미를 내각시무대신으로 임명해 이샤마 황제 곁에 붙어 있게 했다.
오스테라 총독은 혼란 틈에 번개같이 탑의 도시를 차지해 놓고는 반란군을 대신 진압했다던가 하는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늘어놓고 있었다. 그런 주제에 눌러앉아 나갈 생각도 하지 않았다. 황도에서도 당장은 탑의 도시를 탈환할 겨를이 없었지만 황제의 붕어를 틈탄 오스테라의 배신을 불쾌하게 여기는 기류가 팽배했다.
그와 함께 수상한 소문이 퍼지고 있었다. 오스테라의 배후에 사라졌던 황녀, 카타니아가 있다는 것이었다.
이윽고 파비트라 일행은 고대의 숲 근처에 도달했다. 이 거대한 수림을 넘어가면 서쪽 대륙에서 건너왔다는 자들의 왕국, 이니스테르가 있었다.
몇 세대 전, 제국과 이니스테르는 전쟁을 벌인 적이 있었으나 초승달 왕좌가 개입하면서 승리도 패배도 없이 끝났다. 그 후 숲이 천연의 방벽 노릇을 했기에 이쪽 지역은 제국의 최북단으로 여겨졌다. 사실상 제국의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하는 지역이기도 했다. 정보력을 자랑해 온 류이진도 이쪽 지역에 대해 들은 거라고는 풍문뿐이었다.
뜻밖으로 파비트라는 이쪽의 지리를 잘 알았다. 페레들의 옛 땅으로 알려진 초원을 누비며 허허벌판에서 잘도 길을 찾아 어느 골짜기에 이르렀다. 그 속에는 마을이 숨어 있었다. 파비트라는 마을 입구에 이르러 한 사내와 대화를 나눴다. 그자는 곧 깜짝 놀라더니 안으로 달음질쳐 사라졌다.
잠시 후 모든 주민들이 파비트라를 보러 몰려나왔다. 대부분은 여제 앞에 꿇어 엎드렸지만 몇몇은 그러는 대신 반가워하며 특이한 인사 동작을 했다. 파비트라는 그들과 같은 인사 동작을 해 보였다. 마치 한패임을 확인하는 표시 같았다.
설명을 듣고 보니 이들은 오래 전, 파비트라가 베난 황제를 피해 이샤마를 데리고 황도를 탈출했을 때 2년간 함께 지낸 자들로서 정체는 마적들이었다. 당시 이스밀을 찾아갈 수 없어 방랑 생활을 택했던 파비트라는 우연히 이들과 조우하여 함께 지내게 되었다.
그때 마적들이 파비트라 일행을 받아들인 것은 호위 무관 알키미 때문이었다. 마적들은 사나운 사내들이었지만 알키미는 그런 그들을 나무칼 쥐고 나온 어린애처럼 다루는 괴력의 전사였다. 마적단에는 당연히 그런 사내가 필요했다.
처음에 파비트라 모자는 알키미에게 딸린 식구에 불과했다. 그러나 파비트라는 놀라울 만큼 빠르게 마적들의 생활 방식을 받아들였다. 마적들처럼 입고 먹고, 똑같이 말 등에서 생활했다. 어려서부터 알키미에게 배워 오던 검술도 이즈음 일취월장했다.
살아오며 몇 번이나 익숙한 환경이 뒤집어지는 일을 겪어온 파비트라는 어디서든 쉽게 적응할 줄 알았다.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결국 마적들은 살아남고자 분투하는 파비트라와 어린 이샤마를 그들의 일원으로 인정해 주었다. 2년이 흘러 이스밀을 만나러 떠난다고 하자 보내기를 아쉬워했을 정도였다.
파비트라는 황제가 된 후 그들에게 은혜를 갚았다. 마적들은 이제 농부가 되었다. 그들이 꾸려가는 영지는 파비트라가 내려 준 자치 봉토였다. 영주도 그들 중에서 뽑았다.
비록 다시 만나기는 힘들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들은 늘 여제와 황태자의 소식을 궁금해 하고 있었다. 소식이 늦게 전해지는 곳이라 비파 항구에서 일어난 변고도 모르고 있던 그들은 파비트라의 이야기를 듣자 격분했다.
류이진은 한때 마적이었던 농부들의 수를 헤아려 보았다. 2백 명 정도였다. 이걸로는 군대는커녕 황제의 호위대로도 부족했다. 전쟁에서도 쓸모 있는 부대인지는 더더욱 알 길이 없었다. 류이진이 회의적인 기색임을 알아챈 파비트라는 과감한 작전을 말해주었다.
과감하다 못해 자살 행위나 다름없는 작전이었지만 류이진은 그리 오래 생각하지도 않고 ‘그 방법 외엔 없겠다’며 동의하고는 군대 편성에 들어갔다.
농부들은 쟁기를 내던지고 마적으로 돌아왔다. 그들을 한 자리에 집결시킨 류이진은 거창한 칭호로 자신을 소개한 뒤 마적들에게 ‘제국 수호군’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제국 수호군은 다섯 색깔의 깃발로 나뉘고 각 깃발 아래 각각 9천 명의 병사가 속하며 9천 명을 세 개의 부대로 나눈다는 설명을 들은 마적들은 어이가 없었다. 뒤주 속의 쥐까지 세어도 한 부대의 절반이나 편성할 수 있을까 의문이었다.
류이진은 아랑곳 않고 각 부대를 이끌 부장들을 뽑고, 각 깃발을 지휘할 장군들도 뽑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기 자신을 총사령관으로 임명했다. 그러고 나자 각 부대에는 대략 열 명 정도씩 나눠 넣으니 알맞았다. 우스꽝스러운 편성이 끝나자 류이진이 말했다.
“그대들은 4만 5천 대군의 선봉이다. 각자의 뒤에 몇 명이 있는지 세어보라. 1년간 황제 폐하와 제국을 지켜낸다면 그대들 뒤에 4만 5천 명이 나타나 있을 것을 약속한다. 그날, 그대들은 그들을 이끌고 있을 것이다.”
다행히 무기와 갑옷, 말은 충분했다. 말 위에서 살아온 자들이었기에 모두가 뛰어난 기병이기도 했다. 류이진은 스스로 고안한 몇 가지 진을 가르치고 신호에 따라 진을 변경하는 법만 훈련하게 했다.
한 달 뒤, 총 2백 명의 제국 수호군이 첫 출정했다. 목표지는 비파 항구였다. 파비트라 여제와 총사령관 류이진, 그 아래 잠시 영주였다가 마적단 두령으로 돌아온 케사드가 홍군을, 달칸이 청군을, 무이곤이 녹군을, 하딤이 흑군을, 마지막으로 어부 아게우스가 백군을 맡았다.
그 무렵, 황도에서는 이샤마 황제가 파비트라와 이스밀의 아들이라는 소문이 빠르게 퍼지고 있었다. 여제가 아들을 황제로 만들고 싶어 이스밀을 배신했기 때문에 분노한 이스밀이 여제를 죽였다는 것이었다.
소문을 전해들은 메레디스는 예상했던 사태가 생각보다 빨리 닥쳐오고 있음을 느꼈다. 파비트라와 이스밀이 모두 죽은 지금 어린 황제에게는 피붙이도 하나 없었다. 정통성만 꺾어버리면 황위는 저절로 다할에게 굴러들어 올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황족들도 하나 둘 다할 쪽으로 돌아섰다. 그간 파비트라가 쌓아 온 것이 있는데 저렇듯 손바닥 뒤집듯 하는 것을 보면 무언가 숨겨진 대가가 있다는 심증이 갔다. 그게 무엇일까?
얼마 후, 다할은 자신만만하게 유배 중인 베난을 찾아가 이샤마의 출생에 대해 증언을 끌어내려 했다. 그런데 베난의 태도가 뜻밖이었다. 베난은 이샤마가 자신의 아들이라고 단언했다.
초조해진 다할이 유배를 풀어주고 선황제로 예우하겠다고 제안해 보았지만 베난은 비웃을 뿐이었다. ‘파비트라가 가증스러웠다면 다할 네놈은 구차스럽다. 어린애 뒤나 캐고 다니는 변변찮은 놈. 이제 하다하다 너 따위까지 황제가 된다면 제국도 끝물인 게지. 나보다 고작 몇 년 늦게 태어나 이 꼴이 됐다고 믿고 있다면 그 시차야말로 하늘이 네놈한테 보낸 경고란 걸 알아라.’
다할이 베난을 찾아갔다가 돌아온 날 밤, 이샤마 황제의 침전에는 그곳에 예고 없이 드나들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알키미였다.
알키미는 베난을 설득하지 못한 다할이 택할 길은 하나뿐이라고 판단했다. 결행은 빠를 것이다. 다할은 지금껏 너무 오래 기다렸기에 인내심은 바닥나고 눈조차 흐려졌다. 특히 베난에게 거절당했다는 사실은 다할의 오랜 열등감을 자극했을 것이다.
다할은 오랫동안 베난이 자기 몫인 황위를 부당하게 채어갔다고 느껴왔다. 드디어 자기에게 승리가 돌아왔다고 굳게 믿은 순간 굴욕을 당했으니 분노는 사납게 분출될 것이 뻔했다. 베난은 페리사 선황제를 죽이고 황제가 되었는데 다할이라고 못하겠는가?
알키미는 이샤마 황제에게 한 번 더 광야로 나가자고 주청했다. 과거 아기를 안은 파비트라를 지켜냈듯 그는 다시 한 번 어린 황제를 지켜낼 것이었다.
그러자 이샤마가 말했다.
“그러기 전에 하나만 먼저 묻자. 죽은 이스밀 총독이, 짐의 아버지가 맞는가?”
7화
알키미는 순간 그렇다고 대답할 뻔했다.
이제 와서 숨겨야 하는가 하는 생각도 분명히 있었다. 황제라 할지라도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은 같다. 더구나 아들에게는 마땅히 아버지의 죽음을 알 권리가 있지 않은가?
그러나 동시에 파비트라가 내린 명이 떠올랐다. 어떤 일이 있어도 이샤마의 아버지는 베난이어야 하며, 누구보다도 이샤마가 그렇게 알아야 한다고 했다. 황위가 걸린 일이었다. 이샤마를 황제로 만들기 위해 파비트라와 이스밀이 치른 희생이 얼마이던가? 이제 와서 그것을 무위로 돌릴 순 없었다.
알키미는 조용히 답했다.
“아니옵니다, 폐하.”
이샤마는 고개를 끄덕일 뿐 더 캐묻지 않았다. 그날 새벽, 두 사람은 평복으로 갈아입고 황도를 탈출했다. 수 년 전에 파비트라가 그랬던 것처럼.
멀어져가는 황도의 탑 너머로 해가 떠올랐다. 이샤마가 눈물을 보이자 알키미가 말했다.
“심려를 거두십시오, 폐하. 세상 사람들이 여제께서 돌아가신 줄 알았던 때가 몇 번이었습니까? 그러나 결국 어찌 되었습니까? 여제는 신들께서 택하고 담금질한 이 제국의 주인이십니다. 이대로 끝날 리가 없습니다.”
아무런 근거는 없었다. 알키미의 신앙 고백이나 다를 바 없는 말이었다. 그러나 알키미는 신들을 믿듯 자신이 섬겨 온 여제를 믿었다.
이샤마가 그 말을 믿었는지는 분명치 않았다. 어쨌든 그들은 제국의 거친 황야에 몸을 감추었다.
이샤마 황제가 사라졌음이 알려지자 황도의 귀족들은 드디어 다할을 황제로 추대하자고 했다. 다할은 도리를 운운하며 한두 번 거절하는 척 했다. 속으로는 좋아 죽을 지경이었다. 이샤마가 알아서 사라져 주는 바람에 손에 피를 묻힐 필요가 없어졌다. 이제 자신 외에 황제가 될 자는 없었다. 마지막까지 기다린 자가 승리자였다.
세 번째로 중신들과 귀족 백여 명이 찾아가 엎드려 청하자 다할은 못이기는 체 일어나 황궁으로 행차했다. 그런데 막 황궁에 도착했을 때, 급히 달려온 사자가 소식을 알렸다. 자칭 ‘제국 수호군’이라는 자들에게 비파 항구가 함락되었다고.
그리고 그곳에 파비트라 여제의 깃발이 내걸렸노라고.
십 수 일 전, 제국 수호군은 교역선으로 가장한 아게우스의 백군을 먼저 비파 항구의 부둣가로 숨어들게 했다. 교두보가 확보되자 류이진이 잘 아는 뒷길을 통해 청군, 녹군, 흑군을 총독부로 들여보냈다. 이스밀은 총독으로 재임 당시 쇠락한 부둣가를 새롭게 수리했는데 그때의 책임자가 류이진이었다.
비밀 통로는 총독부로 이어졌다. 총독부 안이야말로 류이진이 손바닥 보듯 하는 비밀 통로의 거미줄이었다. 제국 수호군은 순식간에 보초들을 제압하고 주요 시설을 점거했다.
상당수의 관리들은 과거 이스밀에게 은혜를 입어온 터라 쉽게 투항했다. 또한 그들은 류이진이 안 될 것 같은 일에 목숨을 걸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 사이 케사드의 홍군은 마적다운 방식으로 수호관을 돌파해 바르토크의 저택을 급습했다. 파비트라는 홍군의 일원이 되어 옛날처럼 함께 말을 달렸다. 끌려나온 바르토크는 당당하게 ‘마적 따위는 내 목을 베어갈지언정 굴욕을 주지는 못하리라’고 했다. 그러나 복면을 벗은 상대가 파비트라임을 알아보자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파비트라는 왜 이런 일을 벌였느냐고 물었다. 바르토크는 비파 항구를 제국에서 독립시키고 싶었을 뿐이라고 했다. 그러자 파비트라가 말했다.
“너희의 독립을 대가로 짐을 죽이라고 사주한 자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황제를 모살한 대역 죄인이 될 뿐이니까. 너희에게 사면을 약속한 자는 짐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되려는 자일 것이다. 황제가 아니고서는 대역 죄인을 사면해 줄 수가 없으니까. 그자가 누구냐?”
바르토크는 한 가지를 약속해 주면 대답하겠다고 했다. 파비트라는 너희 일가를 살려달라는 말이라면 입 밖에 내지도 말라고 못박았다. 바르토크도 그런 용서를 바라지는 않았다. 대신 ‘저희 일가를 멸하시되 비파 항구는 보전해 주십시오. 제가 폐하를 칠 때 그들은 아무것도 몰랐습니다.’라고 말했다.
파비트라가 대답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자들은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을 것이다.’
파비트라 대신 황제가 되려는 자는 물론 다할이었다. 그러나 바르토크에게 독립을 약속한 자는 카타니아 황녀였다. 카타니아는 비파 항구에만 독립을 약속한 것이 아니었다. 오스테라도 오랫동안 독립을 원했다.
카타니아는 오랫동안 오스테라에 머물며 권력자와 긴밀한 관계가 되었다. 그 후 다할과 접촉해 제국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인 반란을 일으켜 파비트라를 죽이면 다할은 황도를, 카타니아는 탑의 도시를 차지하기로 했다. 다시 말해 그들의 계획은 제국을 갈기갈기 찢어 나눠주고 남은 부분을 삼키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제국은 분배할 전리품에 불과했다.
이야기를 모두 듣고 난 파비트라는 직접 바르토크를 처단했다. 그리고 바르토크의 일가붙이 또한 한 명도 살려두지 않았다. 텅 빈 저택에 불을 지른 홍군은 바람처럼 총독부로 합류했다. 바르토크의 저택은 불덩이로 변해 밤새도록 타올랐다.
아침이 되자 류이진은 총독부에 여제의 깃발을 내건 뒤 조서를 내려 반역자 바르토크가 멸문되었음을 알렸다. 그리고 비파 항구는 대역죄를 지었지만 흰옷을 입고 총독부 문 앞에 와서 절을 하는 자들은 뉘우치는 것으로 알고 여제께서 사면할 것이라고 포고했다.
곧 총독부 문 앞은 흰 옷을 입은 자들로 가득 찼다. 실은 반신반의하며 밑져야 본전이라는 기분으로 나온 자가 많았지만 각자 입을 다물고 있으면 모두 흰 옷을 입었다는 사실만이 남기 마련이었다. 흰 옷을 입고 나온 어마어마한 인파를 본 그들은 감히 다른 생각을 먹을 수가 없었다. 다시 말해 서로가 서로를 투항시킨 셈이었다.
그날, 비파 항구는 파비트라 여제가 처음으로 정복한 땅이 되었다. 조신들의 하례를 받은 파비트라는 가장 먼저 이스밀이 죽었던 정자로 갔다. 정자는 다 타버렸으니 이스밀도 그 속에서 화장된 셈이었다.
여제가 정자로 오르던 계단을 바라보고 있는데 늙은 농부가 찾아와 이스밀이 끼고 있던 총독의 반지를 여제에게 바쳤다. 타버린 정자의 폐허에서 발견해 지금껏 간직해 왔다고 했다. 황금으로 된 반지는 가난한 농부가 평생 번 돈보다도 더 비싼 것이었지만 그는 반지를 팔아버리지 않았다.
과거 이스밀 총독은 가난한 농부들을 위해 소작료의 상한선을 정하고 오랫동안 소작 부치던 땅을 하루아침에 빼앗기지 않는 법을 만들었다. 농부는 그 혜택을 받았던 사람이었다. 그는 비파 항구가 태어난 이래 처음으로 가져 본 과분한 총독을 잃었으니 다시는 그런 은혜를 누릴 자격이 없으리라며 울먹였다.
반지를 받아든 파비트라는 한참 생각한 끝에 ‘귀하처럼 기억하는 사람이 있는 한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그날 밤 파비트라는 류이진과 마주한 자리에서 말했다. 솔직히 다시 비파 항구를 빼앗으면 모조리 불태워버릴 생각이었다고. 지금도 이 땅에는 치가 떨린다고.
그러나 그래선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이스밀은 본의 아니게 이 낯설고 이해하기 어려운 고장의 총독이 되었지만 훌륭히 다스리려고 노력했다. 결국은 배신당하고 말았기에 지금까지는 이스밀이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 파비트라와 류이진이 무모한 작전으로 비파 항구를 되찾을 수 있었던 것은 절반 이상 이스밀의 힘이었다. 이스밀이 수 년 동안 이 자부심 강한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씩 움직여 놓았기 때문이었다.
비록 배신당했을지언정 이스밀의 노력은 사람들의 마음 곳곳에 남아 있었다. 이스밀도 비파 항구를 사랑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스밀에게 이곳은 사실상 유배지였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을 떠나와야만 했기에 억지로 택한 땅이었다. 그렇지만 최선을 다했다. 마치,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땅과 일생 마주칠 일이 없는 백성들로 이뤄진 제국을 보살펴야 하는 황제처럼.
파비트라는 황제였지만 자신이 이 넓은 제국을 구석구석 굽어 살필 의무가 있다는 생각은 그리 깊이 해보지 못했다. 황녀로 태어났고, 이스밀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황제로 만들려고 노력했기에 자연히 황제가 되어야 한다고 믿어왔다. 그렇게 힘들여 얻은 것이니까 사랑하는 아들에게 물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제국의 입장에서는 누가 황제인가가 중요했을까? 최근 수십 년 동안 제국은 몇 번이나 황제를 갈아치웠다. 변방에서는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고, 심지어 바뀌었다는 것조차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을지 모른다. 비파 항구의 사람들에게 파비트라는 누로날 황제나 페리사 황제, 베난 황제와 다른 존재였을까? 총독이 한 농부의 삶을 바꾸었듯, 황제는 그런 존재일 수 없을까?
파비트라는 처음으로 제국을 인지했다. 황제는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꿈틀대며 살아가고 있는 그 제국의 보호자였다. 황위는 누군가가 손에 쥐어 준 달콤한 과자가 아니라 짊어져야 할 책임이었다. 제국이 파비트라를 배신하더라도 파비트라는 그들에게 복수할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배신하게 된 마음을 헤아려야 했다. 그러지 못한다면 황제 노릇을 그만둬야 하는 것이다.
파비트라의 말을 듣고 있던 류이진이 말했다.
“그런데 폐하. 이제 석 달이 다 되었군요.”
파비트라는 퍼뜩 놀랐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지. 이제 떠나고 싶은가? 미리 말해두지만 경은 정한 기간 동안 최선을 다했어. 짐은 깊이 감사하고 있다.”
처음에는 면죄부를 위한 유예기간에 불과했던 석 달이었지만 그렇다고만 보기에 류이진은 지나칠 정도로 최선을 다했다. 목숨을 내던지는 거나 다름없는 작전을 이끌었던 것이다. 파비트라가 다시 물었다.
“이렇게 성공하긴 했지만 사실 이번 탈환 작전이 성공할 가능성은 높지 않았다. 짐이 이 계획을 세웠을 때 경은 반대할 수도 있었어. 석 달 뒤에 떠날 거라면 안전한 곳에 은신하자며 시간을 끄는 것이 가장 나은 방법이었을 것이다.”
류이진은 짧은 한숨을 내쉬더니 신경질을 부렸다.
“폐하께서 소신을 높게 평가하지 않는 줄은 잘 압니다만, 그런데 그건 이스밀 공의 영향입니까? 하여튼 소신은 알키미 경처럼 주군을 위해 섶을 지고 불에라도 뛰어드는 신하는 아니지만, 석 달간 충성하기로 하고서 넉 달째의 목숨을 걱정할 정도의 소인배는 아니란 말입니다.”
“그런가. 그렇다면 재계약을 기대해도 되겠는가?”
“어제까지는 그랬는데 지금 하시는 말씀을 들으니 이제부터가 더 가시밭길일 것 같아 망설여지는군요.”
그렇게 말했지만 류이진은 파비트라의 곁에 남았다. 아직 갈 길은 멀었다. 파비트라는 이미 황제였기에 과거 이스밀처럼 허를 찌르는 작전은 쓸 수 없었다. 반역도당은 정체를 숨기고 있었다. 이제부터 황제가 건재함을 알려 그들이 스스로 정체를 폭로하게 만들어야 했다. 그런 뒤 제국의 백성들이 누구의 손을 들어줄지 기다려야 했다.
이제 파비트라는 자신을 과신하지 않았다. 이스밀이 비파 항구를 보살폈듯 자신이 제국의 목소리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였는지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류이진은 달랐다. 그는 여제와 달리 백성의 마음은 기교로 사로잡고 책략으로 유지한다고 믿었다. 그 둘은 류이진의 전문 분야였다.
이스밀의 죽음은 류이진에게 슬픔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치욕이었다. 자신이 택한 주군을 향해 다가오는 계략을 깨닫지 못하다니.
두 번째로 택한 주군에게는 결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 했다. 다시는 마음을 놓지 않을 것이다. 파비트라 여제가 전 대륙을 발아래 둘 때까지.
8화
파비트라가 건재하다는 소식은 다할을 새 황제로 세우려 하던 자들에게 청천벽력이나 다름없었다. 그들은 지금까지 파비트라가 반역자들에게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는 쪽으로 이야기를 만들어왔기 때문에 죽지 않은 파비트라가 복위하는 것을 막을 명분이 전혀 없었다.
그렇다고 파비트라가 돌아오기를 손 놓고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 목숨이 걸린 문제였으니까.
파비트라가 사라졌던 몇 달 동안 이샤마가 황위에 올랐지만 실질적 지배자는 섭정 다할이었다. 이샤마는 비록 소년이었지만 자신을 고립시키고 다할을 황제로 만들고 싶어 하던 자들이 누구인지 모를 나이는 아니었다. 오죽했으면 황도 밖으로 탈출했겠는가? 앞으로 파비트라가 황도로 돌아와 이샤마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안다면 다할에게 붙은 자들을 살려 두겠는가?
차라리 처음부터 다할이 황제가 되었더라면 여제가 죽은 줄 알고 그랬다고 변명이라도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밀어낸 존재는 파비트라가 목숨처럼 아끼는 황태자였다. 이샤마에게 등을 돌렸던 자들은 파비트라에게 용서받기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그랬기에 무슨 일이 있어도 여제의 복위를 막아야 했다.
마침 막 다할을 황제 자리에 앉히려던 참이었으니 이제 밀어붙이는 수밖에 없었다. 다할 지지파는 비파 항구를 차지한 자들이 정말로 파비트라를 모시는 자들인지도 확인되지 않았고 참칭일 가능성도 있으니 확인부터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때까지 황위를 비워둘 수는 없으니 일단 다할을 황제로 모시고 군대를 파견해 선황제를 찾으러 가자고 했다.
실로 어처구니없는 주장이었지만 그들이 다수였기에 결국 다할은 막무가내로 황위에 올랐다. 이번엔 다할도 사양이 어쩌고 하는 소리는 꺼내지도 않았다.
즉위식은 생략되었지만 일단 한 번 보관을 쓰고 나면 내려가지 않을 명분을 만들기가 훨씬 쉽기 마련이었다. 파비트라 여제의 복위를 기대하던 자들은 이대로는 곧 피의 숙청이 따를 것임을 직감했다. 다할 파의 선황제 논리에 동조해서라도 하루빨리 사신을 파견해 파비트라를 황도로 돌아오게 해야 했다.
물론 다할 파는 하루하루 핑계를 대며 사신 파견을 미루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다할 황제는 재빨리 첫 인사를 단행했는데 정식 임명장을 만들기 위해 황제의 인장을 넣어둔 함을 열어보니 안은 텅 비어 있었다.
누가 인장을 가져갔을까? 이샤마일 수도, 파비트라일 수도 있었다. 이샤마는 황제로 재위하는 동안 한 번도 인장을 사용한 일이 없었다. 그럴 만한 중대한 결정을 내린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때까지는 섭정이었던 다할도 인장에 접근할 수 없었다.
다할 황제는 몹시 화가 났지만 이제 인장을 돌려받기 위해서라도 파비트라와 이샤마를 찾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원로원 회의가 열렸지만 비파 항구로 보내는 것이 사신단인지 조사단인지 영접단인지를 놓고도 한바탕 논란이 벌어졌다. 이름에 따라 파견될 책임자의 격도 달라지기 때문이었다.
그때 메레디스가 나서더니 어장(御葬)을 맡았던 책임자로서 자신이 직접 파비트라를 모셔오겠다고 자원했다.
전임 재상이었던 메레디스가 간다면 사실상 비파 항구에 황제가 있다고 인정하는 것과 같았다. 원로원이 망설이자 메레디스는 살아 있는 황제의 장례를 버젓이 치른 죄인인 자신은 한시라도 빨리 파비트라를 만나 청죄하고 싶으니 제발 자신을 보내어달라고 했다. 하필 그가 어장 책임자였던지라 그의 논리를 꺾을 방법이 없었다.
메레디스가 가게 되자 자연히 그의 격에 맞는 규모 있는 영접단이 구성되었다. 다할 황제는 어쩔 수 없이 메레디스를 떠나보냈지만, 동시에 탑의 도시로 밀사를 급파했다. 황제의 밀서를 받는 사람은 대역 죄인으로 수배된 자, 카타니아 황녀였다.
오래 전, 다할과 카타니아는 공통의 목표를 위해 손을 잡았다. 다할은 황위를 원했다. 반면 카타니아는 이미 대역죄인으로 낙인찍힌 몸이라 황제가 될 순 없었다. 카타니아가 원하는 것은 복수였다. 자신과 아말 황자를 배신한 이스밀, 그리고 파비트라에 대한.
카타니아는 아말 황자가 죽은 후 홀로 도망쳐 많은 고생을 했다. 그러면서 이스밀에게 자신과 아말이 얼마나 안이하고 어리석어 보였을지를 실감했다. 그때까지 그녀는 이스밀에게 복수심을 품기보다는 스스로의 무능함을 자학했다.
그러나 파비트라가 황제가 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생각이 바뀌었다. 이스밀이 한심한 자신들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파비트라를 황제로 만들기 위해 계획적으로 접근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분노로 눈이 뒤집히자 반역을 제안하며 먼저 이스밀을 찾아간 쪽이 자신이었음은 이미 안중에도 없었다.
카타니아는 자학의 시절을 보내는 동안 멀리서 이스밀이 하는 것을 관찰하며 배운 것이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제국의 적이 누구일지를 생각해 보았다. 제국은 자연발생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늦게 합병된 제국의 말단일수록 독립하고자 하는 욕구가 컸다.
그 중 교역권 문제로 과중한 세금을 짊어지고 있는 오스테라의 불만이 가장 크다고 판단했다. 또한 오스테라는 제국의 상비군만한 군대를 용병으로 부릴 정도로 부유했다.
카타니아는 오스테라의 유력자들에게 접근해 오스테라의 힘으로 새 황제를 만들어내면 독립도 꿈은 아니라고 부추겼다. 수 년 간의 황위 다툼으로 황족 대부분이 죽어나간 터라 새 황제 후보는 몇 명 없었다. 그 중에서도 다할이 가장 유력했지만, 사실 다할과 카타니아는 원수 간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다할의 아버지인 누로날 황제를 죽게 한 장본인이 바로 카타니아와 아말이었기 때문이었다.
카타니아는 내심 어려우려니 생각하면서도 다할에게 누로날 황제를 죽인 사람은 이스밀이라고 둘러대며 접근을 시도해 보았는데 의외로 손쉽게 먹혀들었다. 다할은 황제가 되고 싶은 생각으로 몸이 달아 상대를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죽은 지 오래된 아버지쯤은 안중에도 없었다.
카타니아는 다할과 오스테라 사이에 협상을 주선했다. 오스테라 측은 노련하게도 파비트라 여제의 암살 계획에는 관여하지 않고 황위가 비었을 때 다할을 지원하겠다고 암시했다. 그러려니 암살을 맡을 새로운 세력이 필요해졌다. 오스테라 인들은 은근히 비파 항구도 독립을 바라고 있더라는 정보를 흘렸다. 이리하여 바르토크의 배역이 정해졌다.
오스테라는 자진해서 제국의 일원이 된 후 오랫동안 황도의 중신들에게 뇌물을 주어 왔다. 오스테라의 돈에 의지해 온 자들은 때가 되자 일제히 다할에게 기울어졌다. 또한 오스테라는 다할이 황제가 되어 권리를 줄 때까지 기다리는 대신 재빨리 탑의 도시를 차지했다. 이대로라면 다할이 황제로서 자리를 잡은 후에는 오스테라의 독립뿐 아니라 탑의 도시에 대한 권리마저도 요구할 가능성이 높았다.
다시 말해 사실상 파비트라를 없애고 제국을 와해시키려 한 주인공은 다할이나 카타니아라기보다는 그들을 적절히 조종하고 이용한 오스테라 인들이었다.
다할이 보낸 밀서는 탑의 도시에 머물고 있는 카타니아의 손에 들어가지 않았다. 밀사는 탑의 도시 근방의 통행로를 은밀히 지키고 있던 수상한 병사들에게 붙잡혔다. 밀서의 중요성을 알아본 병사는 데비 강 상류의 산속에 진을 친 본진으로 달려가 사령관에게 밀서를 전했다.
사령관 나디르는 다할의 밀서를 펼쳐 보더니 웃었다.
“밀사는 최소한 셋이렷다. 좋다. 너희가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려주마.”
며칠 후 나디르는 전군에 출진 명령을 하달했다. 나디르의 군대의 정체는 오스테라가 쳐들어올 때 탑의 도시에서 연기처럼 사라졌던 수비군, 자색 수련 문양을 옷에 달고 있어 일명 ‘연의군’으로 불리는 군대였다. 그들의 중추는 오래 전에 이스밀과 나디르가 아므르타에서 함께 키웠던 정예병이었다.
나디르가 이끄는 연의군은 산에서 내려와 탑의 도시 근처에 이르러 오스테라군의 움직임을 살폈다. 탑의 도시에서 나온 대 군대가 북쪽으로 진군하는 것을 보고는 소규모 부대를 보내어 뒤를 밟게 했다. 본진은 이틀 정도 거리를 두고 뒤를 따랐다.
오스테라군은 비파 항구 근처에 이르러 군대를 감춘 채 파비트라에게 사신을 보냈다. 내용은 이샤마 황제가 선황제인 어머니를 맞이하러 직접 왔으니 항구 밖으로 친히 맞이하러 나오라는 것이었다.
그때까지 파비트라는 이샤마가 황도를 떠나 모습을 감췄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아들이 직접 왔다는 소식을 들은 파비트라는 가슴이 두근거렸지만 류이진은 편지를 읽자마자 코웃음을 쳤다. 어머니가 살아 있다는 소식에 이샤마 황제가 직접 달려오는 일이야 벌어질 수도 있겠지만 저것을 진짜 황제의 행차로 보기에는 준비기간이 터무니없이 짧다는 것이었다.
저들이 무엇 때문에 서두르는지 모르지만 뭔가 기한 내에 파비트라를 속여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심지어 비파 항구 밖으로 나오라고 하지 않는가?
류이진은 물론 파비트라는 이샤마 황제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면서, 비파 항구에서 성대한 영접을 준비할 테니 환영단을 따라 항구로 들어오시라고 답장을 썼다.
그러자 현재는 이샤마가 황제이므로 파비트라가 직접 맞이하러 나와야 한다는 논리의 편지가 다시 날아들었다. 이제는 파비트라도 확신했다. 진짜로 이샤마라면 이런 신경전은 상상도 하지 않을 것이다.
류이진은 ‘별 수 없군요’라면서 파비트라가 밖으로 행차할 준비를 갖추게 했다. 그리고 시녀 한 사람을 파비트라로 분장시켜 수레에 태웠다. 그리고 파비트라에게 말했다.
“오늘, 반역자들이 태양 아래 모습을 드러내게 될 것입니다.”
9화
가짜 파비트라를 태운 수레는 비파 항구의 팔바니 총독의 인도를 받아 약속 장소로 향했다. 어느 정도 가까워지자 이미 상대의 수작이 훤히 보였다. 저만치 보이는 수레는 황제만이 타는 수레가 아니었거니와 주위의 근위들도 정복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가짜 파비트라의 수레가 멈추자 숨어 있던 오스테라 군이 모습을 드러내어 수레를 겹겹이 포위했다. 팔바니 총독이 항의했지만 안전하게 파비트라를 사로잡았다고 생각한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스테라 군을 지휘한 페오시스 장군은 오스테라의 명문가 출신으로 오스테라 총독과는 사돈간이기도 했다. 페오시스는 이샤마 황제 폐하는 어디 계시냐는 팔바니의 물음은 들은 척도 않고 당당히 파비트라의 수레에 드리운 휘장을 젖히게 했다. 그리고 파비트라로 가장한 시녀를 향해 이샤마 황제 폐하께서 바쁘셔서 이곳에 함께하지 못했는데 너무 아쉬워하지 말라며 조롱하기까지 했다.
시녀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페오시스가 무슨 소리를 하든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수상쩍은 느낌을 받은 페오시스는 파비트라의 얼굴을 아는 카타니아 황녀를 불러왔다. 카타니아는 가짜 파비트라를 보자마자 분통을 터뜨렸다.
“감히 이런 잔재주를 부리다니!”
자존심 강한 페오시스는 농락당했다는 생각에 크게 분개했다. 그는 가짜 파비트라 역을 맡은 시녀가 감히 황제를 참칭했으니 불태워 죽이겠다고 선언했다. 보란 듯이 장작을 쌓아올리고 시녀를 포박해 말뚝에 매달았을 때 시녀의 입이 겨우 열렸다.
“펴, 편지…….”
수레 안을 뒤져보니 과연 편지가 한 통 나왔는데 겉봉에 ‘오스테라의 반역자들에게’라고 적혀 있었다. 편지를 펼쳐보니 ‘오스테라는 세 가지 중대한 죄를 저질렀다. 파비트라 여제 폐하가 보낸 사신을 능멸한 죄, 이샤마 황제 폐하를 모시지 않았으면서도 허위로 고한 참칭의 죄, 그리고 반역자 카타니아를 보호하고 손을 잡은 반역의 죄가 그것이다. 여제께서는 반역 도당을 용서치 않을 것이나 지금이라도 무기를 버리고 투항한다면 목숨만은 살려 주겠다’는 내용이 류이진 특유의 조롱을 듬뿍 담아 씌어 있었다.
류이진은 카타니아가 이들과 동행했다는 사실까지는 몰랐지만 손을 잡은 것은 틀림없다고 여겼으므로 당당히 죄목을 추가해 놓았다. 게다가 편지 말미에는 파비트라 역할을 한 시녀가 오스테라 총독의 이종 조카라는 사실도 친절하게 덧붙여져 있었다. 가짜 역할을 한 시녀의 목숨을 위해 류이진이 나름 취한 배려였다. 놀란 페오시스의 명령으로 급히 장대에서 내려진 시녀는 그제야 말문이 트여 더듬거리며 살려달라고 호소했다.
듣자 하니 이리로 오기 전에 류이진이 시녀에게 알로카시아 독을 소량 입에 넣었다가 뱉게 한 모양이었다. 독 때문에 성대가 붓고 혀가 마비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 덕택에 자신이 누구인지 밝힐 수가 없어 페오시스가 파비트라를 조롱하고, 이어 시녀를 화형에 처하겠다고 매다는 꼴이 만천하에 공개되고 말았다.
그간 오스테라는 황제에게 반기를 들지 않은 체하며 전쟁을 뒷조종하려 했지만 이제 불가능해졌다. 전면전을 벌이려면 빠르게 끝장을 보아야 했다. 그 시작은 비파 항구일 수밖에 없었다.
페오시스는 서둘러 비파 항구를 포위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황제에게 반역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병사들이 동요하는 바람에 진형을 갖추는 데도 시간이 걸렸다. 겨우 공격 태세를 갖추었을 때 다급한 소식이 후방으로부터 병사들을 타고 퍼져 페오시스에게 도달했다. 군대 뒤쪽에서 낯선 군대가 나타났다는 것이었다. 깃발조차 없어 어디의 군대인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오스테라 병사들은 새로운 군대가 아군인지 적군인지 몰라 갈팡질팡하는 바람에 적시에 전투 태세를 갖추지 못했다. 그 사이 낯선 군대는 노도처럼 들이닥쳐 오스테라 군의 후방을 박살냈다. 교전이 벌어지고 나서야 적들의 가슴에 새겨진 문양을 발견한 병사들이 두려워하며 외쳤다.
“연의군이다!”
“사라졌던 연의군이 나타났다!”
이스밀과 나디르가 키운 연의군의 명성은 오스테라에도 잘 알려져 있었다. 탑의 도시를 공략할 때 수비가 너무 쉽게 무너졌기에 연의군 일부가 어딘가에 남아 있으리라고 여겼지만 이렇듯 완벽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연의군은 소문대로 정예병들이었다. 한 명 한 명이 평범한 병사 셋과도 맞서 싸울 실력자들인 데다가 상황에 따라 천변만화하는 진형은 오스테라 군의 혼을 빼놓았다.
그제야 페오시스는 퇴각 명령을 내렸지만 달아나려 해도 앞쪽에는 비파 항구가 버티고 있었다. 곧 성문이 열리고 파비트라가 직접 이끈 군대가 진격해 나왔다. 황제의 친정을 알리는 깃발이 휘날리는 것을 본 오스테라 병사들은 혼란에 빠졌다. 선봉에 선 파비트라가 외쳤다.
“짐이 바로 제국의 주인인 파비트라 황제다! 너희가 감히 황제에게 맞서려 하는가?”
파비트라의 일갈을 들은 병사들이 상당수 대열을 이탈했지만 페오시스의 가문을 섬기는 직속 군대는 전열을 가다듬고 파비트라를 사로잡으려 했다. 그러나 여자라고 얕보았던 여제의 군대 운용 실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마적 출신인 파비트라의 직속병들은 무자비하게 칼을 휘두르며 좌우를 지켰고 파비트라는 쏜살같이 달려와 페오시스에게 칼을 겨눴다. 페오시스는 한 번 속은 것 때문에 인상을 찡그리며 물었다.
“여제께서는 속임수에 능하신가본데 이번에는 진짜라는 걸 어떻게 믿을지 모르겠군요? 게다가 무기를 쓸 줄 아신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도 없는데…….”
파비트라는 대꾸하는 대신 세 박자 만에 페오시스의 목을 날려버리고는 말했다.
“너희가 짐에 대해 아는 건 젊은 여자라는 것뿐이겠지. 그렇지 않은가?”
페오시스가 죽고나자 독 안에 든 쥐가 된 오스테라 군은 패주했다. 고작 수백 명이 산과 들로 달아났을 뿐, 1만여 명에 이르는 주검이 들판에 뿌려졌다.
카타니아는 또다시 용케 달아났다. 카타니아를 놓쳤다는 소식을 들은 류이진은 몹시 분해했지만 보고를 받은 파비트라는 침착했다.
“카타니아는 많은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이지만, 제국은 한 사람의 힘으로 무너지지 않는다. 한 사람이 부술 수 있는 건 이미 균열이 가 있던 성뿐이지. 우리가 할 일은 균열을 막는 것이지 한 사람을 뒤쫓는 것이 아니야.”
전투가 마무리되자 연의군을 이끈 나디르가 비파 항구에 입성해 드디어 파비트라를 알현했다. 오랜만의 재회였다. 파비트라가 오스테라의 바닷가를 뛰놀던 소녀였을 때 처음 알게 된 나디르는 파비트라와 이스밀 부부를 둘러싼 튼튼한 성곽 같은 벗이었다. 그렇게 늘 곁을 지켰지만 이스밀의 요청으로 탑의 도시의 총독이 되어 떠나갔었다.
파비트라 앞에 무릎을 꿇은 나디르가 지난번에 왜 탑의 도시를 오스테라 군에게 내주고 미리 퇴각했는지, 지금껏 어디에서 무엇을 준비하고 있었는지를 보고하고 있는데 파비트라가 옥좌에서 내려와 나디르의 손을 부여잡았다. 나디르는 목이 메어 더 말을 잇지 못했다. 파비트라의 손등으로 굵은 눈물이 떨어지자 파비트라도 눈을 꽉 감았다.
한참 뒤 나디르가 말했다.
“오늘부터 저의 주군은 파비트라 황제 폐하이십니다.”
그 전까지 나디르의 주군은 이스밀이었다. 어려서부터 오늘날까지 줄곧 그랬다. 그 사이 파비트라가 황제가 되었든 아니든 그건 나디르에게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나디르와 이스밀은 요람에 누워 있던 시절부터 함께 한 사이였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음마를 하고, 나란히 말 타기를 배우고, 함께 목검을 휘두르며 자라났다.
나디르의 부모는 이스밀의 부모를 섬겼기에 나디르도 나이가 들며 이스밀을 주군으로 여기게 되었지만 둘의 우정만은 그대로였다. 이스밀이 황도에 숨어들어가 약혼녀인 파비트라 황녀를 구해오던 때도, 파비트라를 위해 반역을 결심하던 때도, 절치부심 끝에 두 번이나 황도를 공략할 때도, 마침내 파비트라를 황좌에 앉히고 나서 이샤마 때문에 물러나기로 결심했을 때도 나디르는 늘 이스밀 곁에 있었고 한 번도 반대하지 않았다.
현명한 주군이자 친구였던 이스밀을 일생 동안 전적으로 따른 것은 나디르에게 한 점의 후회도 없는 일이었지만 단 한 가지만은 그도 후회했다. 이스밀이 비파 항구의 총독이 된 후 고향인 탑의 도시를 맡아 달라고 부탁했을 때, 그때만은 반대했어야 했다. 자신과 연의군이 곁을 지켰더라면 이스밀이 그리 허무하게 쓰러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떠나온 나디르가 이스밀의 신변을 걱정하는 편지를 보냈을 때 이스밀은 비파 항구의 사람들도 자신을 잘 따르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었다. 하지만 역시 항구 놈들 따위는 믿을 것이 못 되었다. 충성심도 명예도 모르는 잡놈들에게 주군을 맡겨 놓고 고향에서 한가롭게 지낸 자신을 나디르는 용서할 수가 없었다.
나디르는 가장 먼저 비파 항구를 떠나자고 주청했다. 이스밀을 죽인 배신자들 곁에서 한시라도 머물 수 없다고 했다. 배신자 바르토크는 죽었고 백성들은 참회하고 있다고 말해도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나디르가 보기에는 유서 깊은 고도인 탑의 도시의 왕자나 다름없었던 이스밀이 물고기나 잡아먹고 사는 비파 항구 따위에 머문 것부터가 잘못된 일이었다.
나디르는 류이진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처음 만나자마자 ‘경은 그간 뭘 했소?’하고 쏘아붙였을 정도였다. 평소 잘난 체 하던 류이진은 바로 곁에 있었으면서도 이스밀을 지켜내지 못했다. 류이진이 그 점을 얼마나 뼈아프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나디르가 알 바 아니었다.
류이진도 파비트라가 목숨을 걸고 직접 비파 항구를 탈환하는 동안 나디르와 연의군은 어디에서 태평하게 숨어 있었느냐고 따질 수도 있었겠지만 일단은 그러지 않았다. 이스밀의 죽음에 대해서는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10화
현재 가장 큰 군대를 거느린 사람이 나디르였으므로 나디르의 의견을 무시하기란 쉽지 않았다. 나디르가 파비트라를 주군으로 삼겠다고 맹세하긴 했지만 파비트라에 대한 충성심보다는 이스밀의 죽음을 복수하기 위해서라고 보는 편이 옳았다.
물론 파비트라가 명령을 내린다면 따르긴 할 것이다. 그러나 연의군은 이스밀과 나디르가 직접 키운 군대였으므로 나디르에 대한 충성심이 강했고, 이스밀을 죽게 한 비파 항구에 대한 적개심도 나디르와 똑같았다. 파비트라가 그들의 뜻을 따라주지 않는다면 그들은 파비트라가 이스밀을 생각하는 마음이 자기들만 못하다고 생각하고 불만을 품을 것이었다.
그러나 파비트라는 결국 나디르의 주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스밀 공의 죽음은 짐에게도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죄인은 처벌되었고, 참회하고 있는 비파 항구의 백성들은 제국의 자식이다. 어버이인 황제는 자식을 꾸짖을지언정 버리지는 않는다. 짐은 언젠가 비파 항구를 떠나 황도로 돌아가겠지만 앞으로도 여전히 비파 항구는 제국의 자식일 것이다.”
파비트라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나디르와 연의군의 불만을 완전히 잠재울 수는 없었다. 연의군과 비파 항구 사람들 사이에는 날마다 크고 작은 충돌이 일어났다. 나디르는 그런 충돌을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형국이었다. 점차 양측 모두에 불만이 쌓여갔다. 류이진은 중재해봤자 통하지 않을 것을 알고 쓴웃음을 지으며 파비트라에게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류이진은 무언가 기다리는 소식이 있는 듯했다. 그 소식이 날아들자 모든 충돌은 잊혀버렸다.
탑의 도시가 탈환되었다. 파비트라도 나디르도 아닌, 고작 천여 명의 영접단을 거느린 메레디스의 힘으로.
메레디스는 파비트라가 있는 비파 항구로 오기 위해 황도를 출발했지만 가던 도중 탑의 도시가 얼마 전 오스테라 군의 출진으로 텅 비다시피 했음을 알게 되었다. 하늘이 내린 절호의 기회였다. 메레디스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탑의 도시로 접근했다.
탑의 도시 사람들에게 오스테라 군은 이방인이자 정복자에 불과했다. 다시 말해 외부의 군사적 도움만 있다면 얼마든지 쫓아내고 싶은 존재였다. 그렇다 할지라도 천 명으로 함락할 만큼 만만한 도시는 아니었다.
메레디스는 먼저 황제의 사절단을 영접하라고 요구한 후, 자신이 거느린 영접단이 선발대에 불과함을 암시하며 지금이야말로 제국의 품으로 돌아올 기회임을 시사했다. 오랫동안 서부에서 첫손가락에 꼽혀 온 도시의 자부심도 슬며시 자극했다.
하늘이 도왔는지 그 무렵 비파 항구의 전투 소식이 전해져 왔다. 탑의 도시 사람들은 메레디스의 도움을 받아 재빨리 남은 오스테라 인들을 내쫓았다. 그리고 탑의 도시는 파비트라 여제가 다스리는 땅임을 선언했다.
그 소식은 두 사람을 화나게 했다. 첫 번째는 가장 최근에 대관식을 한 자신이 엄연히 현 황제라고 믿어 온 다할이었다. 물론 탑의 도시가 파비트라를 지지한 것은 다할을 반대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워낙 거리가 멀다보니 황도의 사정을 세세히 몰랐기 때문에, 다할은 사라진 파비트라 대신 잠시 섭정 황제 역할을 맡은 것뿐이라는 메레디스의 설명을 그대로 믿었을 뿐이었다. 다할이 소식을 듣게 된 것은 다소 후일이었지만 그는 메레디스를 사절단 대표로 삼은 것을 뼈저리게 후회했다.
두 번째는 다름 아닌 나디르였다. 물정 모르는 사람들은 탑의 도시 함락 소식에 나디르가 기뻐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반대였다. 나디르는 격노했다.
이스밀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림자 속에 숨은 적들의 정체를 분명히 알기 위해 통한의 눈물을 흘리며 고향을 적들에게 넘겨주고 나온 나디르였다. 그 후 나디르는 오스테라와 카타니아 황녀가 배후에 있음을 알아냈고, 다시 탑의 도시를 탈환할 날만을 손꼽아 기다려 왔다. 파비트라의 구출과 탑의 도시의 탈환, 이 두 가지를 해내야만 이스밀의 영전에서 면목이 선다고 생각했다.
비파 항구에서 오스테라 군을 섬멸하고 파비트라를 만났으니 이제 거의 이룬 것이나 다름없게 된 염원이었는데, 그것을 엉뚱한 자가 가로채어 갔다. 공들여 농사 지어 놓았더니 지나가던 나그네가 과실만 따 간 형국이었다. 나디르는 분통이 터져 더러운 항구 놈들은 한 명도 믿을 자가 없다고 욕설을 퍼부었다. 메레디스는 하필 비파 항구 출신이기도 했다.
반면 류이진은 메레디스가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고, 이 상황 또한 어느 정도 예상했던 듯했다. 그렇다면 막을 수도 있었으련만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았다. 그는 나디르가 소원대로 직접 탑의 도시까지 되찾아 기고만장해지면 한층 다루기 어려워진다고 판단했다.
또한 개인적으로는 사나운 나디르의 화살을 교묘하게 피하는 효과도 있었다. 그간 나디르는 류이진에게 심사가 꼬여 곧잘 대놓고 면박을 주었고, 류이진의 방침을 어기고 소란을 피우는 부하들도 일부러 내버려두곤 했다. 그러나 메레디스가 나타나 화살 받이가 되어 주자 류이진은 나디르에게서 깨끗이 잊혔다.
나디르의 심사가 어찌됐든 이제 두 도시에 거점을 갖게 된 파비트라는 양쪽의 힘을 합쳐 황도를 공략할지, 아니면 여세를 몰아 반역 도시 오스테라를 정벌할지 정해야 할 시점이었다. 양쪽 목표에는 장단점이 있었다.
류이진이 정리한 바로는 황도로 돌아가기를 택한다면 다할을 폐위시켜 전 제국의 황제라는 지위를 되찾고 이샤마와도 재회하는 장점이 있는 반면(이때까지도 이들은 이샤마가 황도를 탈출했음을 모르고 있었다), 그 사이에 힘을 가다듬은 오스테라를 아주 오래 상대해야 할 위험이 있었다. 또한 황도 공략에 전력을 다하는 사이에 오스테라가 비파 항구나 탑의 도시를 도로 공략할 위험성도 컸다.
반면 오스테라를 먼저 정벌한다면 최근의 패전으로 당황한 오스테라를 간단히 쓸어버리고 복수와 명분을 동시에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의외로 반격이 거셀 가능성이 있고 그 사이 다할에게 황도를 빼앗겨 지방 제국의 주인으로 밀려날 위험을 배제할 수 없었다.
파비트라는 심사숙고한 끝에 황도로 돌아갈 것을 결정했다. 대신 탑의 도시에는 메레디스를, 비파 항구에는 류이진을 남겨두기로 했다. 황도 공략을 앞두고 파비트라의 오른팔이자 책략의 핵심인 류이진을 남기고 가는 것은 위험성이 큰 결정이었지만, 한때 반역을 저질렀던 도시로서 아직도 민심이 아슬아슬한 비파 항구를 지킬 적임자는 이스밀과 함께 비파 항구를 다스려본 류이진뿐이었다.
파비트라는 나디르의 연의군과 마적단 출신들을 중심으로 기동력 있는 부대를 꾸려 황도로 진격했다. 도정 중 크고 작은 도시들에서 충성 맹세를 받았기 때문에 여제가 직접 이끄는 정예군에 대한 소문은 삽시간에 제국 각지로 퍼졌다.
연의군은 이스밀이 죽은 지금 나디르에게 절대 충성하고 있었지만 장교와 고참병들 중에는 어린 시절부터 파비트라를 봐온 자들이 많았다. 그들에게 여제다운 위엄으로 군대를 이끄는 파비트라의 모습은 신선한 경이로움이었다. 이스밀이 지극히 사랑해서 마침내 황제로 세웠던 소녀, 그 소녀가 자라 죽음을 겁내지 않고 늘 선봉에 서는 모습은 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 주었다.
이때의 파비트라는 이스밀과 약속한 대로 이샤마에게 제국을 물려주기 위해 목숨을 걸고 달리고 있었다. 이샤마가 황제가 되어야만 이스밀이 한 희생에 의미가 생겨나기 때문이었다.
병사들은 잘 알지 못했지만 파비트라에게 죽음이란 즉 이스밀과의 재회를 의미했다. 때로 말동무할 류이진조차 없이 홀로 막사에 앉아 있을 때면 그 편이 더 나은 선택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이스밀에게 배운 것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황제에게 제국은 권리가 아니라 숙제이다. 그 숙제를 해내지 못한 황제는 죽을 권리도 없다.
언젠가 파비트라는 그것을 이샤마에게 가르쳐야 했다. 그러기 전에는 이스밀을 만나러 갈 자격 또한 없었다.
긴 행군 끝에 황도가 가까워왔다. 쉽지 않은 행군이었다. 무엇보다 물자 조달이 쉽지 않았다. 제국은 적지가 아니었기에 약탈을 할 수도 없었다. 충성 서약을 받은 도시들에서 물자를 지원받으며 오긴 했지만 민심이 나빠지는 것을 감수해야 했기에 최소한도로 줄일 수밖에 없었다. 그걸 신경 쓰며 군단을 보살피느라 파비트라도 나디르도 훌쩍 말랐을 정도였다.
예상대로 황도 근처에서 습격 부대와 마주쳤다. 나디르는 예전에 이스밀과 함께 오랫동안 황도 공략을 연구했기에 어디에 군대를 숨기기가 좋고 기습하기에 좋은 위치는 어디인지 훤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연의군을 몇 갈래로 나누어 예상 지역이 가까워오면 주머니 끈을 조이듯 양쪽에서 접근해 쉽사리 적을 섬멸했다.
황도의 성벽 아래 다다른 파비트라는 진을 치고 황제가 돌아왔으니 다할이 직접 나와 영접하라고 명령했다. 다할은 파비트라의 귀환을 얼마든지 환영하지만 현 황제는 자신이니 황도로 들어와 배알하라고 맞받았다.
파비트라는 다시 자신이 정한 황태자는 이샤마였지 다할이 아니었으므로 다할이 파비트라의 정통성을 부인하지 않는 이상 다할의 황위는 적법하지 않다고 못 박았다. 다할은 이샤마가 자신에게 직접 양위했으니 적법하다고 주장했다.
“그게 사실인지는 이샤마 황태자에게 직접 들으면 될 일이다. 황태자를 나오게 하라.”
바로 답하지 않던 다할은 며칠 후, 본색을 드러내어 군대를 물리지 않는다면 이샤마의 얼굴을 다시 볼 일은 없을 거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건 곧 자신에게 적법하게 양위한 선황제를 시해하겠다는 주장이었으므로 더 이상의 정통성 논의는 쓸데없는 짓이었다.
어찌됐든 이샤마의 이름이 거론된 이상 파비트라는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나디르가 조언했다.
“송구하오나 폐하, 다할 놈은 벌써 황태자 전하를 시해했을 것입니다. 살아 있다면 일찌감치 성벽 위로 모셔서 어머니인 폐하의 마음을 어지럽히려 했을 텐데 그러지 못하지 않습니까? 저들의 주장을 귀담아들으실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파비트라는 그 말을 선뜻 믿을 수 없었다. 이샤마와 이샤마에게 물려줄 제국을 위해 여기까지 달려왔는데 이미 죽었으리라고 믿으란 말인가? 그리고 무엇보다 파비트라는 마음 속에 굳게 믿는 구석이 있었다.
파비트라가 바로 대답하지 않자 다할은 이샤마가 친필로 썼다는 호소문을 보내왔다. 억류되어 힘든 생활을 하고 있으니 살려달라고 눈물로 호소하는 내용이었다. 그걸 끝까지 읽자마자 내던져버린 파비트라는 벌떡 일어나 전군에게 공격을 준비하라고 명령했다. 나디르가 놀랐을 정도였다. 나디르는 진지 밖으로 뛰어나가는 파비트라를 뒤따라가며 어째서 생각이 바뀌었느냐고 물어보았다.
“이샤마의 편지 어디에도 알키미의 이름이 없었다. 그럴 리 없지. 짐이 떠나오며 황태자 곁에 불사신을 남겨두었거늘. 알키미는 이샤마를 홀로 남겨두고는 죽지도 않을 사람이다.”
11화
오늘날, 제국의 황도는 사라져버린 제국의 이름을 따 ‘하리하랄라야의 폐허’로 불리지만 당대에는 ‘하라니온’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다. 숲과 미래의 신 ‘누하라’, 통칭 하라 신의 이름에서 유래한 ‘신의 도시’였다. 사막과 과거의 신 ‘누하리’, 통칭 하리 여신의 이름과 합해지면 대륙의 이름인 ‘하리하라’가 된다.
황도 하라니온은 밀림을 베어내고 세운 계획 도시였다. 입지가 좋아 자연스럽게 사람이 모여들고 발달한 오스테라, 탑의 도시, 비파 항구 등과는 조건이 전혀 달랐다. 하라니온이 세워지기 전, 제국의 수도는 탑의 도시였다.
서쪽에서 시작되었던 제국이 점차 동쪽으로 뻗어나가면서 탑의 도시는 지나치게 서쪽에 치우친 입지가 되어갔다. 동방의 하슬라와 베로에가 제국의 손아귀에 들어오고 나자 카만 1세는 새로운 황도를 짓겠다고 선언했다.
새 황도는 제국의 중심부에 위치하면서 페레를 비롯한 이민족들로부터 안전해야 했다. 또한 제국의 위용에 맞게 광대한 터를 갖춰야 했다.
하라니온이 들어선 자리는 그런 조건을 갖추긴 했지만 지나치게 깊은 숲속에 있어서 도시를 세우기 위해 엄청난 투자를 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이 선정된 것은 카만 1세가 새로 얻은 하슬라 지역을 마음에 들어 해서 그쪽과 가까운 입지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하라니온은 카만 1세의 치세에 완성되지 못했다. 그러기는커녕 황제가 셋이나 바뀌고서야 겨우 도시다운 면모를 갖춰서 황제 일가가 머물기 시작했을 정도였다. 카만 1세의 구상이 워낙 야심차서 닦은 터만 해도 다른 도시의 몇 배에 달했는데 그 대부분이 전인미답의 밀림을 베어내고 만든 것이었다. 그 위에 로칼로카 산맥에서 운반해 온 자재로 제국에 어울리는 궁전과 시가지를 지어나갔다.
황제가 바뀔 때마다 뭔가 한두 가지씩은 바뀌었고, 갑자기 계획에 없던 저수지가 생겨나거나 했으므로 도시의 완성은 무한한 세월이 걸릴 기세였다.
결국 파비트라의 치세에도 하라니온은 완성된 도시가 아니었다. 당대 제국의 어느 도시보다도 거대했지만 도시 한쪽에서는 여전히 언제 완성될지 모를 탑을 쌓고 있었다.
쉬지 않고 외지에서 운반되어 오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석재와 목재 때문에 황도를 감싼 성벽 한쪽에는 따로 문이 마련되어 있었다. 도시가 완성되고 나면 자연히 없앨 문이었고 위치도 여러 차례 바뀌었기에 정식 이름이 주어지지 않았으나 그런 식으로 이미 수백 년이었다. 그렇다 보니 어느새 일꾼들이 붙인 ‘망치의 문’이라는 이름이 통칭이 되어버렸다.
밤낮으로 열려 있던 망치의 문은 파비트라가 군대를 이끌고 온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폐쇄되었다. 그러나 파비트라는 잘 알고 있었다. 그 문이 어떤 곳인지를. 황도는 파비트라의 고향이었다.
어린 시절, 샤미르 3세의 총애를 받던 어린 황녀 파비트라는 황도의 어디라도 제멋대로 드나들었다. 어린 파비트라는 모험심이 강하고 장난기가 넘쳐서 일부러 호위병들을 따돌리고 숨어버리는 것을 즐겼다. 목이 날아갈 것을 두려워하며 황녀를 찾아 헤매는 호위병들을 위해 해가 지기 전에는 반드시 돌아와 주었기에, 점차 호위병들도 체념하고 황녀가 알아서 돌아오도록 기다리곤 했다.
어린 파비트라는 매번 새로운 장소에 가보겠다는 계획을 세워 황도 이곳저곳을 탐험했다. 그러던 중 망치의 문 위에 있는 좁은 공간에 몸을 숨기고 있으면 재미있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음을 알아챘다. 다른 문으로는 들여올 수 없는 규모가 큰 자재들, 그것을 옮기기 위해 동원된 기묘한 기계와 수레들, 거친 일꾼들, 이국풍의 거래상들, 은밀히 들여오는 금지 물품과 지저분한 거래, 금지된 교단의 신관들, 도망자와 좀도둑과 창녀와 쥐떼, 그 모두가 망치의 문 아래를 지나갔다. 그들은 경비병의 묵인 하에, 또는 경비병의 눈을 속이며 망치의 문을 드나드는 시범을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파비트라가 황도를 공략할 계획을 설명하자 나디르는 미심쩍은 표정이었다. 나디르가 보기에 파비트라는 황제일지 몰라도 지략가는 아니었다. 특히 전쟁은 여자가 잘 해낼 만한 일이 아니라고 여겼다.
그러나 파비트라의 뜻은 단호했다. 자신의 지략이 최선이라고 믿기 때문이 아니라, 전쟁으로 황도의 시민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단지 동정심 때문만은 아니었다. 파비트라에게 이곳은 적국이 아니었다. 그녀가 앞으로도 다스릴 제국의 수도였다.
황도의 성문 하나도 부수고 나면 다시 만들기 위해 세금과 부역을 동원해야 했다. 고작 성문도 그러한데 이민족도 아닌 황제 때문에 집이 부서지고 가족을 잃어버린 백성들의 마음을 되사려면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인가? 그런 일은 처음부터 시작하지 않는 편이 현명했다.
“알겠습니다, 폐하. 분부를 받들겠습니다.”
비록 파비트라의 뜻에 동의했지만 나디르가 파비트라처럼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다. 파비트라의 계략을 따르지 않는다면 택할 방법이 정면대결뿐이었고, 상대 군대가 제 발로 나와 전투에 응해 주지 않는 한 공성전은 기나긴 소모전이 될 수밖에 없었다. 원정군에게는 무한한 시간이나 자원이 주어지지 않는다. 나디르도 한때 황도를 공략해 본 사람으로서 황도의 견고함과 주어진 시한 사이에서 저울질을 해 본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파비트라는 나디르가 이끄는 본대가 주 성문 앞에 진영을 갖춰 이목을 끌게 했다. 자신은 해질녘까지 기다렸다가 변복한 채로 별동대를 이끌고 망치의 문 쪽으로 돌아갔다. 망치의 문은 육중한 나무로 만든 두 겹의 문으로 이뤄졌고 가까운 곳에 두 군데의 방어탑이 있었다.
별동대에는 파비트라가 데려온 마적들이 다수 섞여 있었다. 파비트라는 케사드에게 미리 두 방어탑의 사각 지점이 어디인지 일러두었다. 그리고 자신은 상자 하나와 아게우스를 비롯한 몇 명만 데리고 성문 북쪽의 숨겨진 구멍으로 갔다. 겉으로 보기에는 튼튼한 벽이지만 벽돌 몇 개만 빼내자 좁은 통로가 나타났다. 다섯 사람이 통로로 기어들어가자 성벽 안쪽의 계단이 나타났다. 물론 계단 위쪽은 보초가 지키고 있을 터였다.
그곳에서 파비트라는 상자를 열고 쥐들을 풀어놓았다. 쥐들이 어지러이 흩어지자 곧 성에 사는 쥐들이 뒤쫓아 나왔다. 쥐떼를 뒤쫓아 가니 지하에 위치한 식량 창고가 나타났다. 이 창고는 백여 년 전부터 경비병에게 뇌물을 주고 밀수품을 숨겼다가 들여가는 장소로 쓰여 왔다. 그래서 성벽 안쪽으로 안전하게 들어가는 토굴이 숨겨져 있음을 파비트라는 알고 있었다. 곡물 자루를 치워내자 온갖 밀수품이 쏟아졌고, 이윽고 토굴의 입구도 나타났다.
좁다란 토굴을 더듬어 따라가자 어느 하급관리의 집이 나왔다. 관리의 아내는 갑자기 나타난 사람들을 보고 흠칫했지만 상인 출신인 아게우스가 식량 창고에서 가져온 고급술과 파비트라의 장신구를 건네며 밀수품 상인인 체 하자 곧 평소처럼 그들을 내보내주었다.
밖으로 나오자 파비트라는 아게우스와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아게우스는 나머지를 이끌고 시내 어딘가로 모습을 감추었다.
혼자가 된 파비트라는 천천히 시내를 헤치고 나아갔다. 다할이 야간 통행을 금지하고 물자 징발을 명령한 데다 민심이 어수선했기에 거리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오랜만에 황도의 거리를 걸으면서 파비트라는 오래 전 이스밀이 황궁의 담을 넘어와 탈출하자며 손을 내밀던 때를 떠올렸다. 수 년 뒤 이스밀과 함께 황도로 돌아오던 날도 눈앞에 그려졌다. 이스밀이 비파 항구를 토벌하러 가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성문을 나서다가 뒤를 돌아보던 것도 생각났다. 그때 파비트라는 황궁의 탑에 올라가 떠나는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황궁이 나타났지만 파비트라는 그곳으로 가지 않았다. 대신 황궁 벽을 천천히 돌아 시내 외곽에 있는 알키미의 집으로 갔다.
알키미의 집은 굳게 문이 닫혔고 불도 꺼져 있었다. 파비트라는 울타리를 한 바퀴 빙 돌며 표지를 찾았다. 있었다. 울타리 나무 하나가 쪼개진 틈에 무명 천 조각이 끼워져 있었다. 파비트라가 그걸 끄집어내는데 갑자기 울타리 안쪽의 문이 열렸다. 파비트라는 천 조각을 움켜쥔 채 재빨리 웅크렸다. 집에서 나온 그림자는 다가오는 대신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기다리고 있었나이다.”
알키미의 동생, 알아흐리의 목소리였다. 파비트라는 손에 쥔 천을 펴 보았다. 거기에 적힌 ‘안전’이라는 글자를 보자 눈앞이 흐려졌다. 파비트라는 곧 마음을 다잡고 일어나 알아흐리를 따라 집안으로 들어갔다. 알아흐리는 불을 켜지 않은 채 파비트라를 바닥에 앉게 했다.
“누추한 곳으로 모시게 되어 송구하옵니다, 폐하. 보셨다시피 태자 전하는 무사히 황도를 떠나셨나이다.”
알아흐리는 바닥의 판자를 뜯고는 편지 두 통을 꺼내 보였다. 마지막 편지는 지난 달, 알키미와 이샤마가 매사냥 고원으로 들어간 직후에 쓴 것이었다. 알아흐리가 알키미와 이샤마가 어떻게 탈출했는지 설명하자 파비트라의 얼굴에 웃음이 어렸다.
“알키미는 아직껏 짐을 실망시킨 적이 한 번도 없지.”
파비트라가 편지를 챙겨 넣자 알아흐리가 말했다.
“폐하, 성문 밖에 나디르 장군과 연의군이 와 있다고 들었사옵니다. 황도에는 여전히 폐하를 따르고자 하는 자들이 많으나 폐하께서 돌아오신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다할이 그들 중 많은 자들을 죄목도 국문도 없이 옥에 가두었나이다. 또한 인장을 잃어버렸으므로 사실상 처분이 불가한데도 다할은 그들을 곧 처형할 작정이라 하옵니다. 며칠 전부터 다할은 황가의 재물을 제멋대로 꺼내 어딘가로 옮기고 있나이다. 이러한 연고로 표면적으로 다할을 따르는 자들도 마음속으로는 다할의 폭거에 분노하는 자가 많사옵니다.”
“다할은 지금 황궁에 있는가?”
“주궁을 비우고 다른 궁에 머물고 있다고 하나 정확히 어디인지는 소신도 알지 못하나이다. 폐하, 어서 성문을 부수고 진군하신다면 만백성이 기뻐 눈물을 흘릴 것이옵니다.”
파비트라는 씩 웃었다.
“그건 고마운 얘기지만 짐은 성문이 얼마나 견고한지 잘 알고 있다. 공성기를 가져다가 두드려도 며칠 안에는 부서질 리 없는데 지금 우리에겐 공성기도 없어.”
“허나 신은 우려하지 않나이다. 폐하께서 계획 없이 이 자리에 계실 리가 없음을 잘 알고 있나이다.”
파비트라가 일어나며 빙그레 웃었다.
“그거 근사한 믿음이군. 짐의 계략도 그만큼 근사하게 들어맞는다면 좋겠는데.”
12화
이튿날 아침, 황궁 꼭대기에 파비트라 여제의 깃발이 내걸렸다.
밤새 집 안에 숨어 떨던 사람들은 아침이 되어 깃발을 보자 환호성을 올렸다. 여제께서 돌아오셨다는 외침이 거리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노인들은 샤미르 3세 폐하의 이름을 부르며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렸다.
그간 다할은 황도 사람들에게 극도로 민심을 잃었다. 어쩌면 다할에게는 오랫동안 통치할 계획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전쟁 준비를 하겠답시고 신설한 거래세가 상인들을 옥죄었고 거기에 야간 통행 금지령이 더해지자 시장은 완전히 활기를 잃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오는 투옥 소식도 사람들에게 공포심을 불러 일으켰다. 예전에 파비트라에게 발탁되었거나, 포상을 받았거나, 하다못해 그 시절 관청에서 일을 했다는 이유만으로도 사람들이 감옥으로 잡혀 들어갔다. 그걸 본 시민들은 혹시 자기도 연루된 게 없나 싶어 겁을 집어먹었다. 다할의 측근들이 거느린 자들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런 두려움을 이용해 사람들을 협박하고 온갖 이득을 취했다.
지난 밤, 상당수의 황도군은 교전 도중 스스로 투항해 왔다. 진심으로 다할을 따르는 자는 거의 없었다. 파비트라가 황궁에서 다할과 독대하고 있을 때 문제의 측근들은 짐을 실은 수레와 함께 이미 도망친 뒤였다. 황도의 지리를 잘 아는 연의군 장교들이 탈출로를 추적했지만 황도 근처의 마을에서 버려진 수레만이 발견되었을 뿐, 다할의 측근들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나디르와 연의군은 시민들을 보호하라는 파비트라의 명령을 철저히 지켰다. 교전 중 입힌 피해도 배상할 것을 약속했다. 다만 예외적으로 행동한 자가 있었다. 아게우스의 죽음으로 분노한 케사드는 적을 도륙하면서 집을 여러 채 불태웠고, 항복하는 황도군들은 물론 달아나는 시민들까지 죽였다.
보고를 받은 파비트라는 자신이 좀 더 강하게 주의를 주었어야 했다고 후회했지만 때늦은 일이었다. 케사드는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파비트라를 도왔지만 정예 훈련을 받은 군인이 아니라 성질 사나운 마적이었다.
자신을 자책하면서도 파비트라는 케사드를 벌할 수밖에 없었다.
“황명을 어긴 케사드의 행동은 사형을 받아 마땅하나, 그는 황제의 목숨을 여러 번 살린 공이 있노라. 케사드의 관직을 박탈하고 황도 앞 광장에서 태형 백 대를 내리도록 하라.”
채찍 백 대를 맞고 쓰러졌던 케사드는 파비트라가 은밀히 보내준 의사의 집중적인 보살핌을 받았지만 며칠 뒤 집을 나가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케사드가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생각에 씁쓸해하는 파비트라에게 나디르가 말했다.
“돌아오지 않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케사드는 우리 군의 구성과 전력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만일 그자가 적에게 투항해버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틀린 지적은 아니었다.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음모의 핵심인 부강한 오스테라가, 그리고 이 모든 일을 일으켰던 카타니아 황녀가 남아 있었다. 그들은 지금쯤 다가올 파비트라의 공격에 대비하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주변 도시들로 이미 손을 뻗쳤을지도 몰랐다.
오스테라와의 일전은 이스밀의 복수를 위해서만이 아니었다. 배신이 밝혀진 이상, 오스테라는 제국의 일부가 아니라 다시 병합해야 할 적국이었다. 전선은 어디가 될 것인가?
나디르는 케사드를 지명 수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파비트라는 생각 끝에 그러지 않기로 했다. 케사드는 한때 온 마음을 다해 여제를 섬겼던 신하이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큰 신세를 졌던 은인이기도 했다. 그런 사람을 한 번의 어긋남 때문에 적으로 돌리고 싶지 않았다.
또한 이것은 개인적 감정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신하들의 사기를 고려해야 했다. 케사드와 함께 싸웠던 자들, 케사드가 거느렸던 자들, 특히 마적 출신으로 케사드와 함께 파비트라를 도왔던 자들은 이미 크게 동요하고 있었다. 만약 케사드를 죄인으로 수배한다면 그들의 마음은 되돌리기 힘들어질 터였다.
그리하여 사라진 케사드는 은밀히 수색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찾게 되면 정중히 데려오기로 했지만, 반면 거절한다고 해서 보내 주는 것은 또 안 될 일이었다.
나디르는 파비트라의 결정에 따랐지만 여제가 마음이 여려서 그렇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리고 신하들에게 퍼진 동요도 가라앉지 않았다. 케사드의 행동이 아게우스의 죽음 때문이었음이 알려지자 아게우스의 동료들도 케사드의 처우에 불만을 품게 되었다.
이럴 때 역으로 소문을 퍼뜨려 여론을 뒤집는 것은 류이진의 전공이었지만 그는 이 자리에 없었다. 이제 황제군이 된 파비트라 군의 사기가 흔들릴수록 파비트라는 류이진이 아쉬워졌다. 황도로 데려올까 몇 번이나 생각해 봤지만 역시 지금은 안 될 일이었다.
케사드 문제가 아니더라도 재정복한 황도를 정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짧은 기간 동안 몇 번이나 황제가 바뀐 곳이었다. 천하가 뒤집힐 때마다 사람들은 분열되었고, 그들 사이에 패인 골은 쉽사리 메워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간 다할이 옥에 가뒀던 자들을 풀어주고 중용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그들 중 상당수는 자신이 겪은 고초가 곧 특권을 의미한다고 여겼다. 그들은 다할 시절에 벼슬을 했던 자들을 모조리 파면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적극 가담한 자들은 몰라도 단순히 관리였던 자들까지 파면한다면 국정이 마비될 판이었다. 물과 기름 같은 자들을 함께 일하게 두다 보니 충돌이 벌어지지 않는 곳을 찾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또한 이샤마와 알키미를 찾도록 보낸 자들도 쉽사리 좋은 소식을 가져오지 못했다. 파비트라는 격무와 마음고생으로 전쟁 전보다 더 수척해졌다.
다행히 그 무렵, 황도의 탈환을 알리기 위해 비파 항구와 탑의 도시로 보냈던 사신들이 돌아왔다. 류이진과 메레디스는 황제의 노고를 위로하는 선물과 함께 두 도시가 굳건히 지켜지고 있다는 기쁜 소식을 보내왔다.
메레디스가 지키는 탑의 도시는 오스테라 군의 공격을 한 차례 받았지만 대응하지 않고 성문을 걸어 잠갔고, 적은 수십 일 만에 제풀에 지쳐 물러갔다. 늙은 장군 메레디스는 이제 용장은 아니었지만 수성에는 그만한 적임자가 없었다.
또 하나, 류이진은 아직 진위 확인은 되지 않은 이야기라며 새로운 소식을 적어 보냈다. 페레들이 사는 지역의 준동이 심상치 않다는 것이었다. 오스테라 인들이 변경에 소란을 일으켜 파비트라를 혼란에 빠뜨리려고 자금을 대어 흔들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적의 정세 판단이 너무나 정확해서 파비트라는 헛웃음마저 나왔다. 황도를 정비하며 원정을 준비하는 것만 해도 몸이 둘이라도 모자랄 지경인데 페레들까지 들고 일어난다면 오스테라를 정벌하는 것은 머나먼 미래로 미뤄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오스테라에는 훌륭한 전략가가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 시기, 오스테라의 총독 발니오 안토니오는 사실상 오스테라의 참주였다. 발니오는 개인적으로 부패한 인물이었지만 모략에 능했고 그 때문에 30여 년이나 군림해 왔다. 유력한 귀족 가문들은 발니오를 지지하며 도시 내의 각종 이득이 나는 사업을 독점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스테라는 꽤 안정된 도시였다. 그것은 오스테라 인이라면 선천적으로 타고 난다고까지 여겨지는 ‘균형 감각’ 덕택이라고 했다.
오래 전, 도시가 막 탄생하던 시절부터 독립 및 교역권을 놓고 제국과 줄다리기를 해 온 오스테라 인들은 모든 분야에서 균형을 맞추는 데 탁월했다. 그들은 백성을 수탈하더라도 어느 선에서 자비도 베풀어야 할지, 사업으로 이득을 취하더라도 어느 선에서 분배도 해야 할지, 뇌물을 받아 인사 청탁을 처리하더라도 어느 선에서 정식 임용과 조화시켜야 할지 잘 알았다. 백성들도 이미 그런 지배에 익숙해져 있었다.
발니오 또한 균형에 민감했고 또한 영리했기 때문에 귀족들의 욕망을 조율해 참주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그런 지배가 30년을 넘어가자 발니오도 서서히 균형 감각을 잃기 시작했다.
그 무렵 카타니아 황녀가 오스테라를 찾아와 발니오의 머릿속에 제국의 패자가 될 수 있다는 욕망을 불어넣었다. 그간 오스테라는 늘 제국에서 독립하고 싶어 했지만 몇 번의 시도는 무거운 세금으로만 돌아왔다. 제국이 혼란하고 누구도 완전한 계승권을 주장하기 어려운 시대가 온 지금이야말로 기회가 아니겠는가?
카타니아는 어리디 어린 파비트라와 애송이 이스밀 따위는 노회한 참주인 발니오의 계략에 휘말리면 제 손으로 제 목을 조르면서도 모를 것이라는 것이라고 했다.
발니오는 카타니아를 믿진 않았지만 자기 자신을 믿었다. 못 할 것이 뭐겠는가? 성공한다면 독립은 물론 제국을 쥐락펴락하게 된다. 오스테라의 역사가 뒤바뀌는 것이다.
오스테라 인들은 늘 균형을 잘 알았기에 판돈을 한 곳에 거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 이번만은 그러지 못했다. 어찌 보면 아라야니 1세가 매긴 중과세가 그들의 판단을 흐렸던 것일지도 모른다.
결국 오스테라는 발니오의 판단이 흐려진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비파 항구의 호족을 이용해 ‘낙조대의 난’을 일으켜 이스밀을 죽였고, 다할을 지원하여 황도를 손에 넣게 한 것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얼마 뒤 파비트라에게 도로 비파 항구를 빼앗겼고 공들여 길러 온 군대는 나디르가 이끄는 연의군에게 섬멸 당했다. 잠시 손에 넣었던 탑의 도시는 사절단으로 온 메레디스에게 어처구니없이 빼앗겼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황도마저 탈환당하고 말았다.
세상 물정 모르는 젊은 여자로만 여겼던 여제가 그렇게까지 전략에, 그리고 전투에 능할 줄은 몰랐다. 류이진도, 나디르도, 메레디스도 모두 빼어난 인재들이었지만 그들을 충성하게 한 여제의 힘이 더욱 놀라웠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발니오를 지지했던 오스테라의 귀족들은 고심 끝에 다시 발니오에게 힘을 실어 주기로 했다.
그들도 발니오의 머리를 잘라서 여제를 찾아가 용서를 빈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그런 식으로 비파 항구는 사면을 받았다. 하지만 그러고 나면 오스테라는 그간 누렸던 자유와 부를 잃고 억압의 시대를 맞게 될 것이다. 오스테라 인은 타협과 사탕발림에 능했지만 굴욕을 참는 성격은 아니었다.
오스테라 인은 이제 도시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총 단결했다. 식견이 있다고 이름난 자들이 정파를 불문하고 총독의 성으로 모여들고, 좋은 전략이 있다며 찾아오는 자가 줄을 이었다. 발니오는 그들 모두를 환영했다. 회의가 밤낮으로 벌어졌다.
황도는 지리적으로 멀었다. 원정을 막고 시간을 벌려면 여제에게 새로운 관심사를 주는 것이 가장 좋은 계략이라는 합의가 이뤄졌다. 변경에 소란을 일으키려면 한때 테미 제국을 일으켜 하리하랄라야 제국을 급소까지 위협했던 페레가 가장 좋은 선택이었다. 그들을 매수할 황금이라면 오스테라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같은 무렵, 매사냥 고원의 어느 산길을 아버지와 아들처럼 보이는 두 사람이 걷고 있었다. 알키미와 이샤마였다.
13화
이튿날 아침, 황궁 꼭대기에 파비트라 여제의 깃발이 내걸렸다.
밤새 집 안에 숨어 떨던 사람들은 아침이 되어 깃발을 보자 환호성을 올렸다. 여제께서 돌아오셨다는 외침이 거리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노인들은 샤미르 3세 폐하의 이름을 부르며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렸다.
그간 다할은 황도 사람들에게 극도로 민심을 잃었다. 어쩌면 다할에게는 오랫동안 통치할 계획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전쟁 준비를 하겠답시고 신설한 거래세가 상인들을 옥죄었고 거기에 야간 통행 금지령이 더해지자 시장은 완전히 활기를 잃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오는 투옥 소식도 사람들에게 공포심을 불러 일으켰다. 예전에 파비트라에게 발탁되었거나, 포상을 받았거나, 하다못해 그 시절 관청에서 일을 했다는 이유만으로도 사람들이 감옥으로 잡혀 들어갔다. 그걸 본 시민들은 혹시 자기도 연루된 게 없나 싶어 겁을 집어먹었다. 다할의 측근들이 거느린 자들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런 두려움을 이용해 사람들을 협박하고 온갖 이득을 취했다.
지난 밤, 상당수의 황도군은 교전 도중 스스로 투항해 왔다. 진심으로 다할을 따르는 자는 거의 없었다. 파비트라가 황궁에서 다할과 독대하고 있을 때 문제의 측근들은 짐을 실은 수레와 함께 이미 도망친 뒤였다. 황도의 지리를 잘 아는 연의군 장교들이 탈출로를 추적했지만 황도 근처의 마을에서 버려진 수레만이 발견되었을 뿐, 다할의 측근들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나디르와 연의군은 시민들을 보호하라는 파비트라의 명령을 철저히 지켰다. 교전 중 입힌 피해도 배상할 것을 약속했다. 다만 예외적으로 행동한 자가 있었다. 아게우스의 죽음으로 분노한 케사드는 적을 도륙하면서 집을 여러 채 불태웠고, 항복하는 황도군들은 물론 달아나는 시민들까지 죽였다.
보고를 받은 파비트라는 자신이 좀 더 강하게 주의를 주었어야 했다고 후회했지만 때늦은 일이었다. 케사드는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파비트라를 도왔지만 정예 훈련을 받은 군인이 아니라 성질 사나운 마적이었다.
자신을 자책하면서도 파비트라는 케사드를 벌할 수밖에 없었다.
“황명을 어긴 케사드의 행동은 사형을 받아 마땅하나, 그는 황제의 목숨을 여러 번 살린 공이 있노라. 케사드의 관직을 박탈하고 황도 앞 광장에서 태형 백 대를 내리도록 하라.”
채찍 백 대를 맞고 쓰러졌던 케사드는 파비트라가 은밀히 보내준 의사의 집중적인 보살핌을 받았지만 며칠 뒤 집을 나가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케사드가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생각에 씁쓸해하는 파비트라에게 나디르가 말했다.
“돌아오지 않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케사드는 우리 군의 구성과 전력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만일 그자가 적에게 투항해버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틀린 지적은 아니었다.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음모의 핵심인 부강한 오스테라가, 그리고 이 모든 일을 일으켰던 카타니아 황녀가 남아 있었다. 그들은 지금쯤 다가올 파비트라의 공격에 대비하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주변 도시들로 이미 손을 뻗쳤을지도 몰랐다.
오스테라와의 일전은 이스밀의 복수를 위해서만이 아니었다. 배신이 밝혀진 이상, 오스테라는 제국의 일부가 아니라 다시 병합해야 할 적국이었다. 전선은 어디가 될 것인가?
나디르는 케사드를 지명 수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파비트라는 생각 끝에 그러지 않기로 했다. 케사드는 한때 온 마음을 다해 여제를 섬겼던 신하이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큰 신세를 졌던 은인이기도 했다. 그런 사람을 한 번의 어긋남 때문에 적으로 돌리고 싶지 않았다.
또한 이것은 개인적 감정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신하들의 사기를 고려해야 했다. 케사드와 함께 싸웠던 자들, 케사드가 거느렸던 자들, 특히 마적 출신으로 케사드와 함께 파비트라를 도왔던 자들은 이미 크게 동요하고 있었다. 만약 케사드를 죄인으로 수배한다면 그들의 마음은 되돌리기 힘들어질 터였다.
그리하여 사라진 케사드는 은밀히 수색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찾게 되면 정중히 데려오기로 했지만, 반면 거절한다고 해서 보내 주는 것은 또 안 될 일이었다.
나디르는 파비트라의 결정에 따랐지만 여제가 마음이 여려서 그렇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리고 신하들에게 퍼진 동요도 가라앉지 않았다. 케사드의 행동이 아게우스의 죽음 때문이었음이 알려지자 아게우스의 동료들도 케사드의 처우에 불만을 품게 되었다.
이럴 때 역으로 소문을 퍼뜨려 여론을 뒤집는 것은 류이진의 전공이었지만 그는 이 자리에 없었다. 이제 황제군이 된 파비트라 군의 사기가 흔들릴수록 파비트라는 류이진이 아쉬워졌다. 황도로 데려올까 몇 번이나 생각해 봤지만 역시 지금은 안 될 일이었다.
케사드 문제가 아니더라도 재정복한 황도를 정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짧은 기간 동안 몇 번이나 황제가 바뀐 곳이었다. 천하가 뒤집힐 때마다 사람들은 분열되었고, 그들 사이에 패인 골은 쉽사리 메워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간 다할이 옥에 가뒀던 자들을 풀어주고 중용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그들 중 상당수는 자신이 겪은 고초가 곧 특권을 의미한다고 여겼다. 그들은 다할 시절에 벼슬을 했던 자들을 모조리 파면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적극 가담한 자들은 몰라도 단순히 관리였던 자들까지 파면한다면 국정이 마비될 판이었다. 물과 기름 같은 자들을 함께 일하게 두다 보니 충돌이 벌어지지 않는 곳을 찾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또한 이샤마와 알키미를 찾도록 보낸 자들도 쉽사리 좋은 소식을 가져오지 못했다. 파비트라는 격무와 마음고생으로 전쟁 전보다 더 수척해졌다.
다행히 그 무렵, 황도의 탈환을 알리기 위해 비파 항구와 탑의 도시로 보냈던 사신들이 돌아왔다. 류이진과 메레디스는 황제의 노고를 위로하는 선물과 함께 두 도시가 굳건히 지켜지고 있다는 기쁜 소식을 보내왔다.
메레디스가 지키는 탑의 도시는 오스테라 군의 공격을 한 차례 받았지만 대응하지 않고 성문을 걸어 잠갔고, 적은 수십 일 만에 제풀에 지쳐 물러갔다. 늙은 장군 메레디스는 이제 용장은 아니었지만 수성에는 그만한 적임자가 없었다.
또 하나, 류이진은 아직 진위 확인은 되지 않은 이야기라며 새로운 소식을 적어 보냈다. 페레들이 사는 지역의 준동이 심상치 않다는 것이었다. 오스테라 인들이 변경에 소란을 일으켜 파비트라를 혼란에 빠뜨리려고 자금을 대어 흔들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적의 정세 판단이 너무나 정확해서 파비트라는 헛웃음마저 나왔다. 황도를 정비하며 원정을 준비하는 것만 해도 몸이 둘이라도 모자랄 지경인데 페레들까지 들고 일어난다면 오스테라를 정벌하는 것은 머나먼 미래로 미뤄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오스테라에는 훌륭한 전략가가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 시기, 오스테라의 총독 발니오 안토니오는 사실상 오스테라의 참주였다. 발니오는 개인적으로 부패한 인물이었지만 모략에 능했고 그 때문에 30여 년이나 군림해 왔다. 유력한 귀족 가문들은 발니오를 지지하며 도시 내의 각종 이득이 나는 사업을 독점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스테라는 꽤 안정된 도시였다. 그것은 오스테라 인이라면 선천적으로 타고 난다고까지 여겨지는 ‘균형 감각’ 덕택이라고 했다.
오래 전, 도시가 막 탄생하던 시절부터 독립 및 교역권을 놓고 제국과 줄다리기를 해 온 오스테라 인들은 모든 분야에서 균형을 맞추는 데 탁월했다. 그들은 백성을 수탈하더라도 어느 선에서 자비도 베풀어야 할지, 사업으로 이득을 취하더라도 어느 선에서 분배도 해야 할지, 뇌물을 받아 인사 청탁을 처리하더라도 어느 선에서 정식 임용과 조화시켜야 할지 잘 알았다. 백성들도 이미 그런 지배에 익숙해져 있었다.
발니오 또한 균형에 민감했고 또한 영리했기 때문에 귀족들의 욕망을 조율해 참주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그런 지배가 30년을 넘어가자 발니오도 서서히 균형 감각을 잃기 시작했다.
그 무렵 카타니아 황녀가 오스테라를 찾아와 발니오의 머릿속에 제국의 패자가 될 수 있다는 욕망을 불어넣었다. 그간 오스테라는 늘 제국에서 독립하고 싶어 했지만 몇 번의 시도는 무거운 세금으로만 돌아왔다. 제국이 혼란하고 누구도 완전한 계승권을 주장하기 어려운 시대가 온 지금이야말로 기회가 아니겠는가?
카타니아는 어리디 어린 파비트라와 애송이 이스밀 따위는 노회한 참주인 발니오의 계략에 휘말리면 제 손으로 제 목을 조르면서도 모를 것이라는 것이라고 했다.
발니오는 카타니아를 믿진 않았지만 자기 자신을 믿었다. 못 할 것이 뭐겠는가? 성공한다면 독립은 물론 제국을 쥐락펴락하게 된다. 오스테라의 역사가 뒤바뀌는 것이다.
오스테라 인들은 늘 균형을 잘 알았기에 판돈을 한 곳에 거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 이번만은 그러지 못했다. 어찌 보면 아라야니 1세가 매긴 중과세가 그들의 판단을 흐렸던 것일지도 모른다.
결국 오스테라는 발니오의 판단이 흐려진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비파 항구의 호족을 이용해 ‘낙조대의 난’을 일으켜 이스밀을 죽였고, 다할을 지원하여 황도를 손에 넣게 한 것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얼마 뒤 파비트라에게 도로 비파 항구를 빼앗겼고 공들여 길러 온 군대는 나디르가 이끄는 연의군에게 섬멸 당했다. 잠시 손에 넣었던 탑의 도시는 사절단으로 온 메레디스에게 어처구니없이 빼앗겼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황도마저 탈환당하고 말았다.
세상 물정 모르는 젊은 여자로만 여겼던 여제가 그렇게까지 전략에, 그리고 전투에 능할 줄은 몰랐다. 류이진도, 나디르도, 메레디스도 모두 빼어난 인재들이었지만 그들을 충성하게 한 여제의 힘이 더욱 놀라웠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발니오를 지지했던 오스테라의 귀족들은 고심 끝에 다시 발니오에게 힘을 실어 주기로 했다.
그들도 발니오의 머리를 잘라서 여제를 찾아가 용서를 빈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그런 식으로 비파 항구는 사면을 받았다. 하지만 그러고 나면 오스테라는 그간 누렸던 자유와 부를 잃고 억압의 시대를 맞게 될 것이다. 오스테라 인은 타협과 사탕발림에 능했지만 굴욕을 참는 성격은 아니었다.
오스테라 인은 이제 도시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총 단결했다. 식견이 있다고 이름난 자들이 정파를 불문하고 총독의 성으로 모여들고, 좋은 전략이 있다며 찾아오는 자가 줄을 이었다. 발니오는 그들 모두를 환영했다. 회의가 밤낮으로 벌어졌다.
황도는 지리적으로 멀었다. 원정을 막고 시간을 벌려면 여제에게 새로운 관심사를 주는 것이 가장 좋은 계략이라는 합의가 이뤄졌다. 변경에 소란을 일으키려면 한때 테미 제국을 일으켜 하리하랄라야 제국을 급소까지 위협했던 페레가 가장 좋은 선택이었다. 그들을 매수할 황금이라면 오스테라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같은 무렵, 매사냥 고원의 어느 산길을 아버지와 아들처럼 보이는 두 사람이 걷고 있었다. 알키미와 이샤마였다.
14화
제국의 변경과 중심부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초원은 수백 년 넘게 페레들의 땅이었다. 한때 그곳에서는 ‘테미’라는 나라가 일어나 하리하랄라야 제국을 위협하기도 했다. 하지만 유목민의 제국이었던 테미는 한편으로는 정착민이 되고픈 유혹을 이기지 못해서, 한편으로는 정착 제국의 치밀함을 갖추지 못해서 결국 무너졌다.
페레의 옛 땅 중 비교적 온화한 초원의 띠와 본래 정착민의 땅이었던 하슬라 일대는 하리하란의 거주지가 되었다. 그러나 변경에 해당하는 매사냥 고원과 ‘로카의 장기말들’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로칼로카 산맥 일대는 제국의 영토이되 여전히 페레들의 땅으로 남았다.
처음에는 제국도 새롭게 복속된 페레들을 어떻게든 다스려보려 했지만 곧 그게 쉬운 일이 아님을 깨달았다. 페레들은 유목민이어서 정착 제국의 문물 및 제도와는 잘 맞지 않았다. 정착민의 방식을 강제한다는 것은 유목민의 생존 기반을 뒤흔드는 일이었다. 초원은 유목 외에 다른 삶의 방식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들을 이주시켜 정착민으로 끌어들이기도 어려웠다. 현실적으로 정착지가 모자란 데다 기존 백성을 위험으로 내모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하리하란 정착지를 만들고자 하는 시도가 여러 번 있었지만 이주자들은 초원의 혹독한 겨울을 견뎌내지 못하고 대부분 이탈했다. 나머지는 페레들과 비슷한 삶의 방식을 받아들여 유목민이 되었다. 그 땅에서는 그렇게 살아가는 수밖에 없었기에.
결국 제국은 초원에 도시를 세우려는 시도를 포기했다. 흩어져버린 페레들은 반란을 일으키지 않을 뿐, 제국에 대한 소속감은 거의 없었다. 이등시민으로서 제국 중심 도시의 출입이 제한되는 것이나 공직에 등용되지 않는 것 따위는 그쪽으로 갈 일도 없는 페레들에게 별 의미도 없는 제약이었다. 그저 공물만 때맞춰 바치면 제국에 복속되기 전에나 다름없이, 다시 말해 변화 없이 살아갈 수 있었다. 즉, 그곳은 변화가 멈춘 곳이었다.
알키미가 황태자 이샤마를 숨길 곳으로 매사냥 고원을 택한 것은 그곳이 제국의 치안력이 미치지 않는 땅이기 때문이었다. 파비트라의 소식을 알 수 없었던 알키미로서는 다할의 치세가 얼마나 갈지 짐작하기 어려웠기에 최대한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달아날 필요가 있었다. 알키미의 고향인 남방의 아므르타를 택하지 않은 것도 현명한 선택이었다. 다할은 두 사람이 사라지자 제일 먼저 아므르타 일대를 샅샅이 뒤지도록 했다.
매사냥 고원을 가로지르기 시작한 알키미와 이샤마는 얼마 안 가 페레 무리를 발견했다. 페레들은 처음에 두 사람을 사로잡으려 했다. 그런 식으로 붙잡힌 자들은 페레 부족에서 일종의 노예로 부려졌다. 가축들조차 인격적으로 아끼는 페레들은 정착민들처럼 노예들을 가혹하게 대하지 않았지만 사고 팔 수 있는 예속물로 여기는 것은 같았다.
그들이 노예를 잡으려 하는 것은 눈사자나 야생 염소를 사로잡아 재산을 불리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때가 되면 이동해야 하는 유목민에게 의미 있는 재산이란 발이 달려 있어야 했다. 발이 달리지 않은 재산을 많이 모으는 것은 기동력을 줄인다는 의미였고, 그건 곧 목숨을 위협하는 행동이었다.
그러나 페레들의 판단은 잘못되었다. 그들이 만난 알키미는 제국 최고의 전사 중 하나였다. 그는 예전에 파비트라와 방랑하던 시절에 몇 번이나 페레들과 맞서 싸워보았기에 페레들의 공격 방식마저 소상히 꿰뚫고 있었다. 알키미는 활쏘기와 말타기에 능한 페레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지형에 교묘하게 자리를 잡고 페레들의 활보다 조금 더 사거리가 먼 활로 그들을 유린했다. 그들이 육탄전으로 접근해 오자 혼자서 십 수 명을 간단히 박살냈다.
마침내 페레들은 알키미가 범상한 상대가 아님을 깨닫고 물러났다. 그러더니 한 명이 다가와 거리를 두고 멈춰 서더니 외쳤다.
“그대는 오래 전에 하늘매 부족의 친구였다. 그렇지 않은가, 여제의 검은 전사여?”
하늘매 부족은 가장 오래된 페레 부족 중 하나였다. 그들의 연원은 원대륙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대이주 당시 페레를 이끌었던 대 마라 ‘피눈물의 치찰라이’가 바로 하늘매 부족 출신이었다. 그 후로 하늘매 부족은 부족의 세력 규모와 관계없이 존중을 받아 왔다.
알키미는 파비트라 및 어린 이샤마와 함께 방랑하던 당시 하늘매 부족의 부락에 머무른 일이 있었다. 그때 그들을 도와 부족 간 전쟁에 참전해 활약했기에 알키미의 존재를 기억하는 자들이 있었던 것이다.
알키미가 누구인지 안 페레들은 태도를 완전히 바꾸어 알키미와 이샤마를 자신들의 부락으로 초대했다. 그들은 흑곰 부족으로 하늘매 부족과는 선린 관계를 맺고 있었다. 부족 전쟁 당시에도 한 편이었기에 알키미 또한 함께 싸운 전사인 셈이었다. 페레들이 동포 다음으로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전우였다. 흑곰 부족은 두 사람을 정성스럽게 환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키미는 이샤마가 황태자임을 밝히지 않았다. 제국에 좋은 감정이 있을 수만은 없는 페레들에게 제 발로 굴러들어온 황태자란 너무 가혹한 유혹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알키미는 흑곰 부족의 부족장인 ‘칸자리 마라’에게 파비트라 여제가 배신을 당해 생사를 알지 못하게 됐으며 자신은 다할을 섬길 수 없어 황도를 떠났다고만 설명했다. 이샤마는 우연히 구조해서 동행한 소년인 것으로 미리 말을 맞추었다.
칸자리 마라는 페레는 친구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는다며 자신이 도울 일이 있다면 얼마든지 말하라고 했다. 알키미는 일단 그들의 부락에 머물게만 해 주면 족하다고 답했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흑곰 부족과 함께 지내게 되었다. 처음에 이샤마는 페레들과의 생활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그가 과거 페레들과 지냈던 때는 한 살 박이 아기였으니 그 생활이 기억날 리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샤마는 알키미에게 자신을 빈틈없이 돌보려 하기보다 내버려두라고 명했다. 황태자임을 숨기기로 했으니 그에 걸맞게 처신할 생각이었다.
극도로 물을 아낀다든가, 가축의 분변을 간직한다든가, 죽은 눈사자를 먹는다든가 하는 페레들의 기묘한 생활 방식은 처음에는 거부감만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이샤마는 현명한 소년이었기에 얼마 안 가 그런 풍습 뒤에 숨은 진정한 의미를 알아차렸다.
이샤마는 뛰어난 전사의 재목은 아니었기에 페레들의 전투 방식을 배우지는 못했다. 대신 그는 광포한 야만족으로만 알았던 페레들이 생각 외로 고차원적인 도덕관념과 빼어난 서정성마저 갖췄음을 알게 되었다.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자연을 이용하려고만 하는 하리하란과는 전혀 달랐다.
그간 이샤마는 정치 다툼과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라났다. 아버지는 부재했고, 어머니는 자신을 사랑하긴 했지만 너무나 바빴다. 그는 어머니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바쁜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아들인 자신을 위해서라고 하니 그런 줄 알긴 했지만, 그렇게 해서 갖게 되는 제국에 무슨 근사한 의미가 있는지 실감되지는 않았다. 그가 보아 온 제국은 마치 살아 있는 괴물 같은 존재였다. 사람들은 제국이라는 수레바퀴를 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가 바퀴에 치여 덧없이 쓸려갔다.
이샤마에게는 정을 붙일 사람이 거의 없었다. 친족이란 든든한 병풍이자 만나기만 해도 즐거운 존재여야 할 텐데, 이샤마에게는 모두 칼을 쥐고 노려보는 원수들이었다.
이샤마는 흑곰 부족과 지내는 동안 페레들이 시를 짓는 방식을 배웠고, 눈사자나 가축들과 다정한 관계를 맺는 것에 마음이 움직였다. 그리고 무소유에 가까운 페레들의 생활 방식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점차 그는 왜 어머니가 황제여야만 하고, 자신은 제국을 물려받아야만 하는지에 대해 회의를 느꼈다. 왜 무언가를 가져야만 하고 빼앗기지 않아야만 하는지, 그리고 빼앗긴 것을 왜 피를 흘려서라도 되빼앗아야 하는지 잘 알 수가 없었다.
그 무렵, 오스테라에서는 페레를 움직여 변경을 교란할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발니오가 모아들인 책사들은 파비트라가 직접 페레를 정벌하러 출진하지는 못하리라고 보았다. 간신히 되찾은 황도를 다시 비우는 것은 위험 부담이 크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가장 가까운 도시는 호랑이 눈인데, 페레들의 소란이 작다면 그곳의 군대가 움직이겠지만, 규모가 커진다면 결국 탑의 도시에 파병 요청을 할 수밖에 없으리라고 추측했다.
오스테라가 기다리는 때가 그 순간이었다. 방어가 약해진 탑의 도시를 탈환하여 제국을 반으로 가르고, 여세를 몰아 호랑이 눈까지 차지한 후 비파 항구를 고립시킨다. 그렇게 되면 천하의 류이진이라 한들 오스테라와 협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조언자들로부터 그런 계획을 받아든 발니오가 만족스러워하고 있을 때, 한 젊은이가 발니오를 만나기를 청했다. 오스테라의 작은 귀족 가문인 칼리아이의 수장으로 이름은 칼리오 아르카디오라고 했다. 아르카디오는 자발적으로 모여든 조언자의 무리 중 하나였으나 그들과 토론하다가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발니오를 직접 찾아온 것이었다.
이번 위기를 맞아 찾아온 자들과 모두 직접 대화한다는 원칙을 세웠기에 잠시 시간을 내긴 했지만 발니오는 새파랗게 젊은 방문객에게 큰 관심을 품지 않았다. 하품을 하는 발니오 앞에서 아르카디오가 말했다.
“그자들의 계획은 안이합니다. 그들은 전쟁을 장기놀이처럼 보고 있습니다. 이쪽에서 졸을 움직인다고 해서 저쪽에서 그걸 반드시 잡으러 온다고 보십니까?”
“그게 졸이라는 걸 모르게 하자는 게 아닌가. 페레는 한때 테미 제국을 세워서 제국을 파멸시킬 뻔 했던 적이란 말이야.”
“여제가 그까짓 걸 구별 못하리라고 보십니까? 여제는 다할을 물리치고 황도를 되찾아 자신이 풋내기가 아님을 입증했습니다. 그리고 류이진은 어떻습니까? 제국에서 둘을 찾아보기 어려운 모략의 귀재가 그런 눈속임에 속아 넘어간다고요? 메레디스는 또 어떻습니까? 그는 절대로 엉덩이가 가볍지 않습니다.”
듣다 못한 발니오가 짜증이 나서 말했다.
“그럼 자네는 어찌하잔 말인가? 다른 멋진 계략이라도 있나?”
그러자 아르카디오는 자신만만하게, 그 시기 오스테라의 어떤 책사도 할 수 없었을 말을 했다.
“그렇게 물으시니 제 생각을 말씀드리죠. 대륙에서 평균적으로 가장 영리하다는 오스테라에서 나름 뛰어나다는 사람들이 모두 모였는데도 조언자들의 눈이 왜 어두울까요? 그 이유는 우리가 승리해야 한다는 전제를 버리지 못하고 무의미한 계략을 짜내기 때문입니다. 황도를 되찾은 여제는 잠시 어려움을 겪을지언정 곧 전 제국에 지배력을 회복할 것입니다. 다할이 죽은 이상 달리 황제가 될 자도 없습니다. 우리가 변방부터 차근차근 공략하려 해도 천재적인 류이진과 진중한 메레디스가 지키는 두 도시는 굳건합니다. 그 둘을 등 뒤에 남겨두고 황도를 공략한 여제가 성공했을 때부터 저울추는 이미 기울었습니다. 그러므로 단언컨대, 저항하다가 파멸을 자초하기보다 하루빨리 여제에게 항복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아르카디오는 발니오의 집에서 쫓겨났다. 이미 파비트라와 대결하기로 결정한 오스테라에서 그의 의견은 금기 그 자체였다. 누구도 그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아니, 귀를 기울일 수 없었다.
15화
그 해, 오스테라 사람들은 수백 년 동안 쌓아온 생존 방식을 잊은 듯했다. 피하기도, 이기기도 힘든 전쟁이 하루하루 다가온다는 생각, 자유를 잃고 노예로 전락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합리적 판단을 앗아갔다.
전쟁 준비는 착착 진행되어 갔지만 상당수의 사람들이 징병을 피해 오스테라를 탈출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생업을 잊고 소요를 일으켰다. 음악 소리도, 구경거리도 사라졌다. 도시의 많은 부분이 사실상 마비 상태가 되었다. 상거래는 오스테라 사람들의 심장 같은 것이었기에 멈추지 않는 곳은 시장뿐이었다.
발니오에게서 쫓겨났지만 칼리오 아르카디오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진짜 전쟁이 다가오면 차라리 지금을 두려워하게 되리라고 믿었다. 그는 몇몇 유력 귀족들을 만나 보았지만 그들은 발니오와 마찬가지로 투항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그를 내쫓아버렸다. 결국 최후의 방법만이 남았다.
아르카디오는 아내에게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으로 가라고 일렀다. 그의 아내는 탑의 도시 출신이었다. 혼자 남은 그는 오스테라에서 가장 번화한 광장으로 가서 광장을 바라보고 있는 작은 점포를 임대했다. 그런 후, 아르카디오는 점포의 입구를 부숴버리고 내부에는 사람들이 내버린 폐자재를 모아와 기묘한 연단을 쌓았다. 부러진 조각상의 머리들이 맨 아래에 깔려 있었다. 곳곳에 매어 놓은 찢어진 비단이 깃발처럼 펄럭거렸다.
하루에 수만 명이 지나가는 광장이었기에 기묘한 연단은 곧 관심을 끌었다. 쓰레기더미 같기도 했지만 묘하게 예술품 같은 구석도 있었다. 그 위에 상복 차림으로 선 아르카디오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말없이 굽어보고 있었다. 한참이나 그러고 있자 어떤 사람이 소리쳐 말을 걸었다.
“그 위에서 뭘 하슈?”
“애도하고 있습니다.”
“애도라니? 누가 죽었소?”
“아직은 아니지만, 곧 죽게 될 겁니다.”
“그거 안됐구려. 가까운 사람인 모양이군.”
“네. 저 자신이니까, 저 이상으로 가까운 사람이 없긴 하겠군요.”
연단의 높이 때문에 대화는 외침으로 오갈 수밖에 없어 곧 주위 사람들의 흥미를 끌었다. 사람들은 겉보기에 멀쩡해 보이는 아르카디오가 왜 죽게 되는지 궁금해서 각종 추측을 쏟아냈다. 누군가가 언제 죽느냐고 묻자 아르카디오는 자신이 반 년 뒤에 죽게 되며, 아마 자신의 죽음을 애도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같아 미리 애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친구도 가족도 없느냐는 질문이 나오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뇨.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땐 그들도 이미 죽어 있을 겁니다. 그래서 그들의 죽음도 함께 애도하고 있습니다.”
점점 궁금함이 증폭되자 한 사람이 큰 소리로 물었다.
“대체 영문을 모르겠군. 반 년 뒤에 당신과 그들이 죽게 되는 이유가 뭐요?”
“오스테라 인이기 때문입니다.”
모여들었던 사람들은 순간 불쾌한 표정이 되어 서로를 보았다. 아르카디오가 곧 닥칠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음을 모두 알아차렸던 것이다.
“이봐, 지금 우리 모두가 곧 여제의 군대에게 학살당할 거다, 뭐 그런 소릴 하고 싶은 거요?”
“일방적인 학살일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만, 패전하게 될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그 이유는 간단히 생각해봐도 알 수 있습니다.”
곧 사방에서 말이 쏟아졌다. 화를 내며 시비를 걸거나 비난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진지한 질문도 적지 않았다. 오스테라 인은 감정보다 현실적 판단이 앞서는 사람들이었고, 제국에서 가장 영리하고 합리적인 도시라는 자부심도 컸다. 그리고 그간 겉으로 표현하지 못했을 뿐, 다가올 전쟁의 결과에 물음표를 품고 있는 사람은 적지 않았다.
아르카디오는 사람들의 질문에 차례차례 대답했다. 단지 질문에 대답할 뿐, 연설을 하거나 선동을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모여드는 사람들은 점차 더 많아졌다.
아르카디오는 평범한 달변가가 아니었다. 그의 대답은 짧고 예리하면서도 핵심적이었다. 그리고 감정적 대응에 말려들지도 않았다. 모여든 사람들이 화를 내면서도 그의 대답을 듣고 싶어서 소요를 자제할 정도였다. 그러나 곧 치안대가 나타났다. 치안대가 선동 및 소란 혐의로 그를 체포하려 하자 아르카디오가 말했다.
“난 내 점포에 가만히 서 있다가 사람들의 질문에 대답했을 뿐입니다. 사람들에게 내 말을 들으라든가, 모이라는 말 한 마디도 한 적이 없죠. 다시 말해 총독 각하의 법을 전혀 어기지 않았단 말입니다.”
그러거나 저러거나 치안대는 일단 아르카디오를 체포해 갔다. 그러나 이튿날이 되자 그는 바로 풀려났다. 그의 말대로 아무 혐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다못해 광장 가운데 서 있기라도 했다면 선동 목적이라고 몰아갈 수라도 있었을 텐데 아르카디오는 일부러 점포를 빌렸다. 상업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오스테라에서는 자기 점포에서 무슨 짓을 하든 자기 마음이었다. 그리고 그의 신분이 귀족이라는 점도 항변에 도움을 주었다.
아르카디오는 다시 광장에 나타나 느릿느릿 연단 위로 올라가 섰다. 소문을 듣고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아르카디오는 새롭게 질문에 답하기 시작했다. 질문은 더 어려워졌지만 그의 대답에는 막힘이 없었다.
아르카디오를 보러 오는 사람들은 하루하루 많아졌다. 결국 다시 체포당했지만 이번에는 점포 앞에 모인 사람들이 아르카디오의 이름을 연호하며 항의했다. 그리고 자기들끼리 정보를 주고받았다.
전쟁의 공포에 휩싸인 오스테라에서 수십 일 만에 아르카디오는 가장 유명한 이름이 되었다. 아르카디오가 분석해 준 오스테라의 상태 및 발니오의 안이한 대응책, 탑의 도시와 비파 항구의 정세, 여제가 보여준 전략과 연승 등에 대한 정보가 오스테라를 들끓게 하자 발니오도 여론을 견디다 못해 아르카디오를 불렀다. 전략 회의 자리에 불려온 아르카디오에게 발니오가 말했다.
“이런 일을 벌인 건 분명히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겠지. 좋네. 우리가 자네의 말을 무조건 들어준다면 어떤 전략을 제시하겠나? 단, 여제에게 항복하라는 말만 빼고 말해보게.”
아르카디오는 그런 조건에서라면 할 말이 없다고 거절했지만 그들은 고향의 미래와 자유를 위해 차선책이나 차차선책이라도 말해보라고 계속 졸라댔다. 아마도 젊었기에, 결국 아르카디오는 끝까지 거절하지 못하고 한 가지 의견을 말했다.
아르카디오의 말을 들은 발니오와 참모들은 크게 놀랐다가 곧 희색이 만면해졌다. 과연 생각지도 못한 계책이었다. 그랬기에 그들은 아르카디오가 뒤이어 한 말을 신중하게 생각하지 않고 넘겨버렸다.
그날 아르카디오는 분명히 경고했다. 이것으로 시간을 벌고 여제를 궁지에 빠뜨릴 순 있겠지만, 미래에 더 큰 복수를 부르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그리고 그런 일이 닥치면 분노한 여제가 오스테라를 잿더미로 만드는 것을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그 무렵, 흑곰 부족에서 지내던 알키미는 파비트라 여제가 황도를 탈환했다는 소문을 전해 들었다. 그는 즉시 칸자리 마라를 찾아가 황도로 돌아가겠다고 알리고 이샤마를 찾으러 갔다. 이샤마는 페레 아이들과 함께 호숫가에 앉아 낚시를 하고 있었다.
이샤마는 십 년 넘게 낚시를 해 온 페레 아이들보다 모든 면에서 서툴렀다. 하지만 아이들의 행동을 조용히 관찰하는 능력은 뛰어났다. 알키미가 다가오자 이샤마는 ‘쉿, 지금은 말하면 안 돼’라고 말하는 것처럼 입술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
이샤마의 예상대로 곧 한 아이가 큰 물고기를 낚았고, 아이들은 모두 기뻐하며 춤을 추었다. 이샤마는 그걸 바라보고 있다가 춤에 어울렸다. 물고기를 낚은 것은 한 아이였지만 아이들은 함께 있었던 모두를 칭찬했다. 이어 그들은 물고기를 구워 먹을 준비를 했다. 물고기는 아마 공평하게 나누어질 것이다.
이샤마는 그제야 기다리던 알키미에게 다가왔다. 알키미는 파비트라가 황도를 탈환했고 다할은 죽었음을 알렸다. 그리고 이제 황궁은 안전하니 돌아가자고 말했다.
이샤마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대답했다.
“안전하겠지. 황제 폐하는 완벽한 분이니까. 그런데 내 즐거움도 그곳에 있을까?”
“폐하께서 그 모든 어려운 일을 해내시는 것이 오직 전하를 위해서임을 모르십니까?”
알키미의 말은 최근 변화된 파비트라의 생각과 완전히 같지 않았지만 알키미는 아직 알지 못했거니와 그런 차이를 이해할 만한 성격도 아니었다. 그에게는 부모자식 간의 사랑, 혈통적 정당성, 신들이 선택한 제국의 주인과 같은 쪽이 훨씬 받아들이기 쉬운 개념이었다.
이샤마가 대답했다.
“그래. 그렇다고 하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하지만 내가 그걸 좋아할지 물어보신 적은 없잖아. 폐하께서 안전하신 것은 기뻐. 다시 황도를 차지하신 것도 기뻐. 하지만 난 궁으로 돌아갈 일보다 저 아이들과 물고기를 먹을 일을 생각할 때 더 가슴이 뛰거든.”
알키미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이샤마는 웃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튿날 이샤마는 순순히 알키미를 따라 칸자리 마라가 마련해 준 말에 올랐다. 말도 잘 통하지 않던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면서. 두 사람은 페레 회합에 참석하러 가는 흑곰 부족의 전사들과 함께 남하했다가 이탈해서 초원의 띠를 통해 황도로 돌아갈 계획이었다.
그 계획은 안전해 보였다. 그들은 페레 회합이 왜 열리는지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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